'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로저홀딩스 회장은 지난해 7월 한국 방문 당시 “한국은 넘치는 에너지와 역동성을 잃어서 더 이상 매력을 끄는 나라가 아니다”라면서 “활력을 잃고 몰락하는 사회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 청년들이 창업 성공률보다 합격률이 훨씬 낮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걸 보며 한 얘기다. 열정과 모험을 지향하는 기업가 정신 고갈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 혁신 시스템이 제대로 없던 척박한 시절에도 탁월한 기업가 정신으로 가난을 딛고 일어섰다.
그러나 한국 경제 성장세는 1980년대 이후 지속 하락했다. 최근 20년 동안 김대중 정부 5.1%. 노무현 정부 4.4%, 이명박 정부 3.4%, 박근혜 정부 2%대 등 성장률이 5년마다 약 1%포인트(P) 낮아지고 있다.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기업가 정신 지수 역시 1980년대 이후 동반 하락하고 있어 경제 성장 위기와 겹치는 모양새다.
조지프 슘페터가 강조했듯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창의 기업가에 의해 생산 요소 간 신결합, 즉 창조적 파괴가 활발하게 이뤄질 때 장기 불황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의 핵심 요소는 '열정'과 '모험'이다. 기업가 정신을 나타내는 대표 지표는 '창업(스타트업)'이다.
그동안 정부는 식어 가는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려고 창업 문턱을 낮추고, 창업 유인과 활성화를 위해 모태펀드 등 여러 지원 제도를 운영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더욱 강조한다.
그런데 국제무역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 창업 기업의 5년 생존율은 2015년 현재 27%다. 독일(39%), 영국(41%)에 비해 훨씬 낮다. 우리나라는 주식회사형 벤처캐피털(VC)인 창업투자회사가 85% 이상이다. 나머지는 유한회사형 VC다. 혁신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는 VC 유형의 구조에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혁신 창업 생태계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VC의 법률 실체는 유한회사형(LLC) 또는 조합형(LP, LLP)이다. 특히 세계 경제에서 G2인 미국과 중국도 VC 형태 가운데 주식회사형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이 유한회사형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민간 대기업이 국가 예산이 아니라 민간 자본으로 모태펀드를 형성한 뒤 갓 창업한 벤처회사에 투자한다.
주식회사형 VC는 주주와 출자자, 주식회사와 투자조합 간 이해 충돌에 따른 위험이 커서 선택하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주 우선의 위험 회피 투자 전략 때문에 VC 역할을 잊은 채 초기 벤처 투자를 회피할 확률이 매우 높다.
참고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은 '전문가가 자본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바탕에 깔려 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나 변호사가 대형 주식회사에 소속돼 대주주 목적에 맞춰 전문성을 자본 도구로 소비하는 것을 저지하는 다양한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질의해 보니 중소벤처기업부나 한국벤처투자는 모태펀드 운용·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답변을 했다. 그러나 이후 주식회사형 VC 설립 기준을 종전의 5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낮추는 조치를 강행하는 모습을 보니 주식회사형 VC 중심의 모태펀드 운용 정책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는 아직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벤처·창업 혁신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VC 출자는 모태펀드 의존도가 높다. 중기부나 이를 운용·관리하는 한국벤처투자는 VC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은행이 기업에 대출하는 것처럼, 개미투자자가 주식 투자하는 것처럼 안전성과 안정성 중심 사고 틀 안에서 관행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벤처·창업 혁신 생태계 조성과 활성화에 성공하려면 '기업가 정신'이 관건이다. 종래의 정부 정책이 혁신은 강조하면서도 정작 기업가 정신을 높이는 부분은 간과한 게 사실이다.
기업가 정신 창달을 위해서는 국가 예산을 기반으로 하는 모태펀드를 유한회사형 VC 중심으로 'VC를 VC답게' 운용하는 방안이 속히 마련돼야 한다.
홍의락 더불어민주당 의원 iraq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