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원천기술인 블록체인에 관심이 뜨겁다. 가상화폐 투기는 잠재우되 블록체인 기술만큼은 육성하자는 목소리도 있고,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떼어서 논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도 있다.
블록체인은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표 기술로 꼽힌다. 국내외 기업과 공공기관도 앞다퉈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디지털 공공 장부로 불리는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일종의 묶음(block) 형식으로 분산·저장해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공유한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이 아니므로 해킹과 위·변조 위험이 적고, 제3의 중개기관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다.
계약이 자동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조건을 설정하는 것이 가능해 보험금 청구, 본인인증 등 반복적인 업무에도 효율적이다.
거래 비용은 적고, 정보의 신뢰도는 높기에 다보스포럼은 2027년 전 세계 총생산(GDP)의 10%가 블록체인 기술로 저장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세계 블록체인 시장이 2022년 100억달러(약 10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국내 활용사례는 없을까?
이미 블록체인은 금융, 물류,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달부터 블록체인 기반의 실손의료보험금 자동청구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서비스 이용자는 번거롭게 각종 서류를 보험사에 직접 보내지 않아도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진료비를 낼 때 병원에 보험금 청구 의사를 밝히고, 휴대전화 앱으로 보험사에 보낼 진료기록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삼성SDS는 작년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 기반의 전자 신분증과 지급재가 서비스를 삼성카드에 적용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작년 10월부터 블록체인 기반의 공동인증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 증권사에서 인증 절차를 거치면 별도의 등록 절차 없이 다른 증권사에서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는 작년 6월 블록체인 기반의 인증 서비스를 출시해 7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모았다.
물류 분야에서는 화주·선사·세관 등이 신용장(L/C) 등 관련 서류를 블록체인으로 공유해 발급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이미 삼성SDS와 SK주식회사 C&C 등이 물류업체와 관련 서비스를 개발해 시범 적용하고 있다. 서류를 처리하는 비용이 해상운송 비용의 5분의 1에 달하는 상황에서 물류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블록체인은 자원의 효율적 관리에도 효과적이다.
한국전력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웃 간 전력거래 및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구축했고, KT는 지난 11월 전자문서 데이터를 무제한 저장할 수 있는 차세대 전자문서 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공공 분야에서는 서울시가 시정업무에 블록체인을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 중이다. 청년수당, 중고차 매매 등 개인정보 활용이 필요한 분야에 블록체인을 우선 적용하고 2022년까지 전체 시정 업무에 확산하는 것이 목표다.
경기도는 작년 2월 주민제안 공모사업 심사에 블록체인을 통한 전자투표를 도입해 관심을 끌었다.
해외에서도 블록체인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 월마트는 식품의 유통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호주 스타트업 파워레저는 블록체인 기반의 P2P(개인 간) 에너지 교환 시스템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해운업체 A.P. 몰러-머스크와 IBM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국제무역 디지털 플랫폼을 개발할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결국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화폐에만 국한해 키우느냐, 마느냐 논의할 시비거리는 아니다.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해 '파이'를 키우느냐의 문제다.
최지호기자 jho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