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온 기업이 있다. 부품소재 사업만으로 매출 3조원의 중견그룹으로 성장한 일진그룹이다.
22일 일진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은행 여신심사 때 30년 넘은 기업은 서류도 보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30년 이상 이어온 기업은 서류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저력이 있다는 의미다. 기업이 30년 이상 살아남기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물며 해당 분야에서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지내온 반세기에 대한 평가에는 어떤 사족이 달릴 수 없다. 그만큼 일진그룹 50년은 여전히 우리 산업의 취약분야로 꼽히는 부품소재는 물론 전체 기업사에도 의미 있는 일이다.
1975년 회사 자본금과 동일한 3000만원을 투자해 국내 최초로 동복강선을 개발해 전국 통신선 보급에 기여했다. 1987년에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 3번째로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를 개발했다. 당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와 벌인 특허소송은 아직도 회자된다. IMF 위기에 처한 1997년에는 14년 개발 끝에 전자산업 핵심소재인 일렉포일을 국산화했다. 도시건축의 새 장을 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적용한 '커튼월' 공법이나 국내 강관업계 숙원사업인 심리스(seamless) 강관도 일진이 일군 성과다.
50년 전 날마다 앞을 향해 전진한다는 뜻을 담은 '일진(日進)'의 여전히 진행형이다.
'기술보국(技術報國)'의 신념 하나로 과감히 창업에 나섰던 20대 후반 젊은 엔지니어는 여전히 '창의'와 '도전'을 기업 핵심 가치로 꼽는다.
그런 그가 우리나라의 정체됨을 우려하고 있다. 계속 발전하지 않으면, 상대방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사회라는 점을 강조한다.
숭고한 노력이나 노동의 가치보다 가상화폐나 부동산 투기로 인한 일확천금이 더 선호되고 있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않는 일진그룹의 50년 가치,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기업가정신이 더 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