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세탁기에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단행했다. 업계에서는 세이프가드로 대표되는 미국 보호무역주의가 다른 가전 품목이나 산업까지 손을 뻗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덤핑 문제뿐만 아니라 지식재산권(IP) 분쟁까지 미국 정부의 무역 '장벽'을 넘기 위한 걸림돌이 많다.
이번 세이프가드는 월풀 등 미국 가전 제조업체가 “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으로 시작됐다. 세탁기뿐만 아니라 미국에 수입되는 어떤 제품도 산업에 영향을 주면 강력한 규제가 뒤 따를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기업에 피해가 간다는 애매모호한 논리는 전자·IT뿐만 아니라 자동차, 에너지 등 주력 수출 분야 모두에 해당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세이프가드를 시작으로 미국 보호무역주의가 다방면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다각도 대응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미국은 2011년 한국산 냉장고에 대해서도 세이프가드를 추진한 적 있다. 미국산 냉장고와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는 논리로 관세 폭탄은 면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보다 엄격한 잣대를 가졌다는 게 이번 세이프가드로 입증됐다. 미국 산업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전자·IT 기업이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만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공세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 가전 시장에서 1위, LG전자는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과 LG에 밀린 월풀 등 미국 전자·IT 기업이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다른 품목에 대해서도 피해를 호소할 수 있다. 기업이 총구를 겨누고 미국 정부가 방아쇠를 당기는 식이다. 이 때문에 미국 세이프가드가 다른 품목으로 파급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덤핑뿐만 아니라 IP도 미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제 미 ITC는 삼성전자가 미국 기술기업 웹익스체인지 사물인터넷(IoT)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는 주장에 관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IP 침해에 대해 “이달 중 거액의 벌금을 물리겠다”면서 “중국이 정책을 바꾸기 전까지는 (중국의) 피해가 클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은 중국에 한정했지만 IP를 무기로 삼은 보호무역주의 공격이 언제든지 우리나라를 향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미 수출 품목 대부분이 보호무역주의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미국 시장에서 영향력이 높은 전자·IT와 자동차 분야에서 추가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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