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외부인과 부적절한 접촉을 막기 위해 도입한 '한국판 로비스트법'이 시작부터 무용지물 논란에 직면했다.
당초 계획했던 '로비스트 명부'를 부득이 만들지 않기로 하며 외부인 접촉 관리 부실화 우려가 나온다. 별도 직업이 있는 공정위 비상임위원은 외부인과 접촉 사실을 제대로 보고할 리 없다는 지적도 있다. 보고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직원마다 천차만별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높다.
25일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시행한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에 따라 하루 평균 7~8건의 외부인 접촉 사실 내부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
공정위는 직원이 로펌·대기업 관계자, 공정위 퇴직자와 접촉할 때 상세 내역을 감사담당관에게 의무 보고하도록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훈령)을 제정, 1일부터 시행했다. '외압'이 공정위 조사·심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그러나 해당 규정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공정위 규정은 '로비스트 양성화'가 핵심이다. 공정위 직원과 접촉하는 외부인을 공식화 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청탁 등을 예방한다는 목표다. 공정위는 보고 대상 외부인 명부를 확보해 관리할 방침이었지만 기업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계획을 철회했다. 명부가 없기 때문에 공정위 직원은 스스로 '관련 업무 취급자' 여부 등을 판단해 보고하고 있다.
공정위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최초 계획은 '외부인에게 등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었지만 입법 과정에서 무산됐고 이를 대신할 '로비스트 명부' 작성마저 포기했다”며 “당초 취지대로 외부인 접촉 관리가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비상임위원에게는 외부인 접촉 사실 보고 의무가 '남의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상임위원은 공정위 전원회의(1심 판결 효력을 갖는 심의) 참가자 총 9명 중 4명을 차지한다. 심의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정위는 비상임위원에게도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 준수 의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비상임위원은 교수·변호사 등 본래의 직업을 유지해 다양한 외부인과 접촉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보고가 제대로 이뤄질리 없다는 주장이다.
로펌의 한 관계자는 “어떤 공정위 직원은 '보고 의무는 별로 상관없다, 편하게 연락하라'고 하는데 다른 직원은 '부담스럽다'고 말 하더라”면서 “되도록 카카오톡 같은 것을 이용하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위 관계자는 “실무자 사이에서는 '사고는 다 윗분들이 치는데 일반 직원이 더 불편해 진다'는 불만이 나오는 게 사실”이라며 “규정을 만든 취지는 이해하지만 많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