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국민 경제를 유지하는 영양분으로, 에너지망을 통해 공장·가정 등 사회 구성 요소에 전달된다. 국가의 혈관과 혈액이다. 지난해 우리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명칭 아래 분산화, 신재생, 탈원전, 탈석탄 등 다양한 논쟁을 겪었다. 한 국가의 에너지 믹스 중요성 인식이 제고된 긍정 효과도 있다. 논쟁 중심에는 다양한 지속 가능성 원칙 가운데 어느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 하는 '노선 논쟁' 또는 '가치 논쟁'이 있다.
2018년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는 해다. 노선과 가치를 둘러싼 국가의 선택을 합리 타당하게 처리,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관철하는 지혜를 모을 좋은 기회다. 에너지는 본질이 대단히 복잡한 집단 이슈로 이뤄진 '한 묶음'이다. 어떤 이슈를 중심에 두고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해 다음 몇 가지 이슈를 우선 고민하면서 시작했으면 한다.
에너지 본질과 관련된 가장 첨예한 논쟁은 '믹스 논쟁'이다. 각 국가는 에너지와 정치·사회 여건 등을 종합해서 믹스를 택한다. 자원 보유 상황, 경제 구조, 인프라 수준, 사회 구조, 국민 인식 등이 대표 여건이다. 지금은 전기에너지를 둘러싼 원전·석탄·가스 등 전통 에너지 및 신재생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 높게 운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믹스 논쟁이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가스와 신재생을 강화하는 정책은 적정한지, 실천 가능성이 담보되고는 있는지 등 실질 평가가 필요하다. 정책 의지와 다르게 현실에서는 가스 퇴출 우려가 있다. 동시에 에너지 효율화 관심이 사라진 점도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3020 목표는 달성할 수 있는지 하는 우려도 함께 존재한다.
믹스를 선택했다면 이를 지탱하기 위한 비용과 지불 주체가 이슈로 대두된다. 정부, 산업계, 발전사업자, 판매사업자, 소비자, 공장장 등 경제 주체 가운데 누가 어느 정도로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논쟁이 발생할 것이다.
비용 지불의 책임은 다시 한 번 믹스 결정과 관련한 연립방정식 문제로 회귀된다. 누가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어떤 배분이 가장 공정한 것인가, 갈등은 관리가 가능한가 등 사회 이슈에 대한 해법이 필요하다. 이는 정의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에너지에 제약을 주는 근본 규제는 기후 변화 대응이다. 파리협약에서도 기후 협약은 앞으로 에너지 믹스, 사용, 기술 등의 근본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비용을 지불하되 그 비용이 일종의 투자로 전환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기후 대응을 주도하며 수백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호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두 보수 정부에서의 녹색 성장과 에너지신산업 같은 어리석음을 또 저질러선 곤란하다. 비용을 투자로 승화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도덕 에너지의 가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부존자원이 부족함에도 중화학공업을 지향하면서 '한 등 끄기 운동'이라는 독특한 도덕 슬로건의 정착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좌파·우파 간 노선 갈등이 유난히 심각하던 시절부터 한 등 끄기는 좌·우 불문하고 중시된 유별난 '공동의 가치'였다. 현재와 같이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한 상황 아래에서 이러한 도덕 가치는 갈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극심한 분열 사회에 미미한 통합의 상징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이러한 이슈 중심으로 필요한 모든 논의를 해야 한다. 공리주의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의 성숙함과 함께 공동의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의 소중함과 그에 수반되는 고통에 대한 정의로운 배분이 공감대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혁신을 통한 도덕성 제고와 동시에 상업 성취도 달성하기를 희망한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 cskim40718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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