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택의 과학국정]<5>화마는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다

[임춘택의 과학국정]<5>화마는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다

41명의 생명을 앗아간 밀양 세종병원 화재 원인이 전기합선인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불법 증축과정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가 컸는데, 소규모 병원에도 의무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공호흡기 중단 피해도 발생해 정전시 발전기가 가동하지 않은 것을 조사 중이다. 화재사고 행정책임 소재도 논란이다. 그런데 이런 조치를 잘 한다고 화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0년간 44만건 화재가 발생해 3247명이 사망하고 1만8563명이 다쳤다. 3조6438억원 재산피해도 입었다. 대형사고만 보면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로 21명,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사망했다. 매일 평균 121건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죽고 5명이 다치며 10억원의 재산손실이 발생했다. 연도별로 큰 변동도 없어 그동안의 소방행정 중심 대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화재 방지는 법이 아니라 기술이고, 화재 진압은 노력이 아니라 과학이다. 이것이 확보돼야 선진국이다.

주목할 것은 전체 화재사고의 23%나 차지하는 전기화재다. 부주의에 의한 화재(51%)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발화 요인이다. 밀양 세종병원, 제천 스포츠센터, 그제 신촌세브란스 병원 화재 모두 발화원이 전기다. 전기합선이나 과열로 회로에 이상이 생기면 전기가 차단돼야 한다. 그러면 대개 화재로 이어지지 않는다.

불행히도 대부분 국내 회로차단기는 전기화재를 막지 못한다. 과전류(많은 전류)와 누전(새는 전류)만 차단하고 전기화재의 주범인 아크(전기불꽃)는 차단하지 못한다. 아크차단기(AFCI)는 미국과 캐나다도 각각 1999년과 2002년에 도입을 시작해 2014년과 2015년에 가정에까지 설치를 의무화했다. 아크차단기 보급으로 전기화재는 절반으로 줄었다. 단, 아크차단기가 예민해서 오작동이 잦고 비싸다. 국방·원전에 쓰이는 내화 전선도 전기화재를 대폭 줄이지만 매우 비싸다. 안전에는 비용과 불편이 따른다.

스프링클러 설치 문제도 간단치 않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됐는데도 작동하지 않았다. 조사 중인데, 고장일 수도 있지만 일부러 꺼놓았을 수도 있다. 화재경보기도 꺼놓는 경우가 많다. 담배 연기나 난방기에 의한 오작동이 잦기 때문이다. 법령을 강화하거나 소방점검을 해도 큰 효과가 없다. 오작동 피해는 눈앞의 현실이고 화재는 피해갈 수 있다고 보는 풍토 때문이다.

인화성 단열재도 화재참사를 키웠다. 제천에서는 드라이비트 외장재, 밀양에서는 스치로폼이 문제였다. 2009년 건물 외장재 규제완화로 안전을 값싼 건설비와 바꾼 대가다.

안전 불감증과 불법·부정으로 인한 인재로 화재원인을 몰고 가지 말자. 사람을 처벌해도 문제는 미해결된 채로 남는다. 대신 사람중심의 선진형 안전 생태계를 만들자. 소방·방재는 선진국이 갖는 능력이다. 여기에 투자하면 당장은 비용이 들지만 국민이 안전해지고 안전산업도 육성 선순환된다.

보건·환경·안전 분야는 적정 규제가 필수다. 다만, 법령만으로 일률 규제하기에 현장이 간단치 않다. 불합리한 규제는 불법·부정을 촉발한다. 규제를 혁신 인프라로 보고 현장 맞춤형으로 가야 한다. 사전 규제보다 사후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안전에는 신뢰성 확보가 필수다. 그런데 화재의 복잡성과 판별의 모호성으로 인한 오작동이 문제다. 4차 산업혁명으로 화재감지용 지능형 센서와 소방용 사물인터넷이 가능해졌다. 화재 경보시 모바일로 오작동 감별 기회를 주면 된다. 경제성 높은 소방기술 개발이 화마를 잡을 수 있다.

모든 다중시설에서는 계절마다 화재대피훈련을 하자. 화재를 과학·경제적으로 대비할 민·관 소방규제설계위원회도 총리실에 설치하자. 모든 소방안전 점검결과는 시·군·구청 홈페이지에 올리게 하자. 주요 사고예방 신고 시 간첩신고에 준하는 포상금을 주자.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ctri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