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대기업은 슈퍼호황에 힘입어 사상 최고 실적을 냈다. 반면에 후방 산업인 장비, 재료, 부품 업체는 호황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이유는 있다. 기술력이 떨어져서다. 대기업은 선도 기술을 개발해 호황을 주도했다. 그러나 후방 산업계는 그만한 기술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반도체의 경우 원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세계적 기술이 적용된 장비나 재료를 써야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국내 반도체 장비와 재료 국산화율은 각각 20% 이하, 40% 이하 수준 밖에 안 된다. 10년 전에 비해 오히려 조금씩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장비 국산화율은 60% 수준으로 10년 전(50%)과 비교하면 성장이 더디다. 디스플레이 재료 국산화율 역시 30% 수준에 그친다.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 장기적으론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전체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 기업, 학계가 모여 반도체·디스플레이 상생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을 적극 환영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국내 총생산 약 20%를 차지하는 국가 기반 산업이다. 후방 업체 육성은 국가 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이 기회다. 반도체 대기업은 5나노 실리콘 핀펫 기반 소자와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새로운 소자 구조와 재료 기술을 찾는 중이다. 2020년 이후 폭발적으로 도입될 인공지능(AI) 반도체 소자를 포함해 차세대 이동통신용 칩 등은 현재 CMOS 트랜지스터와 비교해 1000배 빠른 동작 속도와 1000분의 1 수준으로 낮은 전력소모량을 요구한다. 이를 충족하려면 새로운 재료와 장비 기술이 필요하다. 디스플레이도 초고해상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패널과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위한 가변형 소재, 고유연·고경도 필름 등 기술 장벽에 둘러 쌓여있다. 국내 대기업과 후방 산업계가 합심해 이런 신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모두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기대가 현실이 되려면 정부 예산부처와 국회가 인식을 바꿔야 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하면 결국 혜택은 대기업으로만 돌아간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인식은 R&D 지원 감소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R&D 지원이 줄어든 결과는 '전문인력 부족'으로 나타났다. 중소, 중견 후방 산업계와 학계는 여전히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지금 우리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는 중국이 뛰어들어 거센 추격전을 펼치고 있다. 상생발전 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정부, 반도체 소자,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와 후방 산업계, 학계가 모두 동참해 중국의 추격을 초격차로 벌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자.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