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체계 구조 조정에 들어갔다. 비대한 행정 효율화와 연구 현장의 부담 최소화가 골자다.
우선 수십년 동안 축적된 R&D 행정 체계의 군살을 빼야 한다. 국가 R&D 예산은 한 해 20조원에 육박한다. 투자 자금 증액보다 관리 효율화가 중요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조조정 '철학'이다. 문재인 정부는 '연구자 중심' 과학기술 정책을 약속했다. 최근 나온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기능 재정비, R&D 관리 규정 통일, 연구비 관리 시스템 통합, 연구과제 관리 시스템 표준화 모두 연구자의 행정 부담 최소화가 목적이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옥상옥'을 걷어 낸다.
최근 논의 과정을 보면 '연구자 중심'이라는 국정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기능 재정비 과정에서 '1부처 1기관' 방침이 채택됐다. 연구자를 중심에 놓고 연구 분야별로 관리 기능을 재정비하자는 게 애초의 취지지만 부처 영역을 하나씩은 보장하는 방향으로 타협했다. 이마저도 상당한 반발과 갈등이 예상된다.
R&D 관리 규정 통일은 더 큰 난제다. 각 부처가 자신들의 규정을 내놓지 않으려고 반발하고 있다. 기초·원천 R&D 사업 통합 수행도 부처 갈등의 핵으로 떠올랐다. 하루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내년도 예산안이 위태롭다. 각 부처의 제 밥그릇 챙기기에 R&D 혁신이 표류하는 형국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키를 움켜쥐어야 하지만 추진력과 조정력은 기대에 못 미친다. 현장에선 “혁신본부에 혁신이 안 보인다” “칼을 쥐어 줘도 휘두르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가연구개발특별법만 해도 연내에 제정하려면 격론이 한창이어야 하는데 너무나 조용하다.
혁신본부가 철학과 명분을 앞세워서 각 부처를 설득해야 한다. “혁신본부도 어차피 과기부 아니냐”는 반발을 듣지 않으려면 부처 입장보다 연구자 중심 철학을 내세워야 한다. 당·청 지원도 중요하다. 혁신본부는 아직 한 살이 채 안 됐다. '컨트롤타워' 간판에 걸맞은 힘을 단 몇 개월 만에 혼자 키우기란 쉽지 않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