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게임업체 A사는 올해 사업계획에서 중국 비즈니즈 비중을 대폭 축소했다. 중국 파트너 텐센트로부터 “한국게임 판호 발급 재개 여부를 모르겠다”는 전망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리 대비해 사업 리스트를 최소화 한 것이다.
A사 경영진 중 한 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텐센트가) 연말이면 판호 발급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올해는 그들도 모르겠다고 한다”면서 “중국 내 진짜 전문가들은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힘겨루기를 기회로 중국 내 정치력 강화를 꾀하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한반도 사드배치로 인한 무역제재를 쉽게 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회사 경영진은 지난해 수시로 텐센트와 접촉하며 판호 발급 상황을 입체적으로 살폈다. 2017년 3월부터 중국 정부가 시작한 한국 게임 판호 금지 조치를 한중 게임사가 공동 대응한 셈이다.
텐센트는 한국 게임사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텐센트는 올해 2월 카카오게임즈에 500억원을 투자했다. 이로써 텐센트가 지분을 투자한 한국 게임 관련업체는 넷마블게임즈, 카카오, 네시삼십삼분, 파티게임즈, 블루홀, 카본아이드 등 공개된 곳만 7개사다.
특히 넷마블게임즈, 넥슨, 엔씨소프트 등 국내 주요 3사는 모두 텐센트와 밀접한 관계다.
넥슨은 텐센트와 공조체제를 갖췄다. 지난해 연말부터 중국 내 '던전앤파이터' 짝퉁게임 단속에 나섰다. 넥슨 자회사 네오플은 텐센트에 중국 내 던전앤파이터 PC게임과 모바일 관련 게임 서비스와 운영권을 독점 위임한다.
텐센트는 2월 중국법원에 던전앤파이터 짝퉁게임 서비스 가처분 중지 결정을 이끌어냈다. 넥슨은 올해 텐센트가 만든 온라인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천애명월도'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텐센트는 넷마블게임즈 지분 17.77%를 가진 3대 주주다. '리니지2레볼루션' 등 주요게임 중국 판권을 가졌다. 넷마블게임즈 게임 대부분이 텐센트를 통해 중국에 서비스 된다. 판호 거부에 일시중시 상태지만 리니지2레볼루션은 중국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넷마블게임즈는 지난해 텐센트 모바일게임 '펜타스톰'을 국내에 들여와 출시했다. 이 게임은 넷마블게임즈가 모바일 e스포츠로 전략육성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온라인게임 '블레이드앤소울' 'MXM' 모바일게임 '블소 모바일' 중국서비스를 텐센트와 함께 진행한다.
◇일방적 구애서 상호 필요한 관계로 발전
텐센트와 한국게임이 최근 더 가까워진 것은 내·외부 요인이 겹쳤다. 텐센트는 중국 내부에서 강력한 경쟁자 도전에 직면했다. 한국 게임사는 중국 판로가 막힌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 사업 경험을 나눈 텐센트 필요성이 더 커졌다.
텐센트와 한국의 인연은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텐센트는 2008년 6월 네오플 액션 RPG '던전앤파이터', 같은 해 7월 스마일게이트 1인칭슈팅(FPS)게임 '크로스파이어'를 연이어 중국 시장에 출시했다.
두 게임 모두 현재까지 중국에서 연간 수조원대 매출을 올리며 선전하고 있다. 텐센트 측에 따르면 텐센트는 지금까지 약 46개 이상 한국게임을 라이선스 계약해 중국 시장에 출시했다.
2010년 이후 텐센트는 한국 게임시장 지배력이 너무 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 대형게임사들이 투자와 온라인게임 제작을 멈췄을 때 텐센트가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국내 시장에서 활로를 못 찾은 게임사들은 중국시장 지배력이 강력한 텐센트와 퍼블리싱 계약에 '올인'하며 여기저기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검수 과정과 출시 지원범위를 정하는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2015년을 전후해 중국 내에서 넷이즈, 스네일게임즈, 룽투 등 신진 세력이 급성장하며 이런 불만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한국 게임사 입장에서는 퍼블리싱, 투자유치 외에도 텐센트 외 대안을 찾을 기회가 많아졌다.
텐센트는 중국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넷이즈와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앱애니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7년 수익기준 상위 퍼블리셔에서 텐센트와 넷이즈는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텐센트 수익이 슈퍼셀 등 글로벌 자회사 매출을 합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회사의 중국 내 모바일게임 점유율은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배틀그라운드'로 글로벌 흥행을 기록한 블루홀은 텐센트 투자 유치 제안을 거부했다. 텐센트는 블루홀 외각에서 5% 이하 소량의 주식을 매입하는데 만족해야했다. 블루홀은 투자유치 대신 중국 서비스 파트너로 텐센트를 택했다. 서로 실리를 챙긴 것이다.
게임사 관계자는 “텐센트가 가장 적극적이고 한국 게임산업에 대해 잘 아는 회사인 것은 여전하다”면서 “일방적인 구애가 아니라 서로 필요에 의해 더 가까워진 만큼 텐센트와 한국게임 사이 관계는 예전보다 건전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표> 텐센트 글로벌 게임사 투자, M&A 현황
김시소 게임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