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농문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국내 최고 몰입 전문가다. 요즘 인기 상종가다. 그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몰입은 잠자는 두뇌를 깨우는 최고의 방법이며 스스로 창조력을 발휘해 행복한 삶을 사는 지름길이다. 두뇌를 최대한 활용할 때 최고 삶을 살 수 있다.”
그는 7년간 몰입을 경험했다. 이를 토대로 독자적 문제해결 방안을 정립했다. 몰입을 통해 연구논문과 학생지도, 기업 경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했다. 사람들은 그를 '난제 해결사'라고 부른다.
황 교수를 2월 26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 교수실에서 만났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성공하고 행복하려면 무턱대고 열심히 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열심히 생각하는 삶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3시간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언제부터 몰입을 연구했나.
▲1990년부터 1997년까지 7년간 몰입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 때 특별한 경험을 했다. 몰입을 하면 능력과 행복감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1986년 박사학위를 받고 첫 직장이 한국표준연구원이었다. 1989년 미국 국립표준연구원(NIST)에 포스터닥(박사후 과정)을 갔다. 가족을 한국에 남겨놓고 혼자서 지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까'를 평소에 화두(話頭)처럼 늘 생각했다. 열심히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라고 판단해 밤 11시까지 연구실에서 연구만 했다. 미국 석학들은 몸 대신 머리를 쓰고 있었다. 그때 두뇌를 쓰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문제가 있으면 1초도 쉬지 않고 의도적으로 생각을 했다. 며칠 지나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해법이 생각나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왔다. 기분이 좋아 천국에 사는 느낌이 들었다. 고도의 몰입상태에 들면 두뇌를 100%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몰입과 화두참선이 비슷한가.
▲화두참선과 비슷하다. 스님들이 화두참선에 들었다가 돈오(頓悟, 단번에 깨달음)하는 것과 다름없다. 스님들은 앉으나 서나 한 생각만 한다는 동정일여(動靜一如)와 꿈속에서도 그 생각만 한다는 몽중일여(夢中一如), 잠속에서도 그 생각만 한다는 숙면일여(熟眠一如)를 실천한다.
-몰입시 부작용은 없었나.
▲몰입 상태가 계속되자 부작용으로 잠이 안 왔다. TV를 봐도 온통 문제 생각만 났다. 잘못하면 머리가 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준비를 하다 한국 대중음악을 들었다. 그 때 몰입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매일 테니스를 단식으로 30분간 치니까 부작용이 없었다.
-몰입에 이르는 과정과 자세는.
▲우선 몰입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문제를 생각한다. 불교는 가부좌를 하는데 나는 편한 자세로 몰입을 시작한다. 두뇌는 1초도 쉬지 않지만 몸은 편안해야 한다. 참선 중 스님이 졸면 죽비로 내려치는데 몰입시 졸리면 선잠을 자는 게 좋다. 자고 나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비몽사몽(非夢似夢) 상태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 편안히 앉아 천천히 생각(slow thinking)해야 집중이 잘 된다. 황 교수가 몰입상태에서 나온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기록한 노트만 수십여권에 달했다. 그는 그게 바로 세렌디피티 특징인데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했다.
-왜 선잠이 창의력에 도움이 되나.
▲어려운 일은 의식 깊은 곳에 있다. 그걸 끄집어내는 의식인출이 어렵다. 깨어있을 때는 인출을 못한다. 잠이 들면 저장은 못하고 끄집어 낼 수는 있다. 그래서 밤낮으로 생각하면 창의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꿈속에서 발견한 게 많다. 벤젤고리는 꿈에서 뱀이 자기 꼬리를 무는 것을 보고 발견했다. 닐스 보어는 진기한 태양계의 모습을 보고 이를 본 딴 원자구조 이론을 만들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나 기상천외한 개미의 세계를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몰입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다음은 최소한 일주일 이상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혼자만의 공간이 있는 게 좋다. 외부 활동은 중단하고 날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
-바쁜 직장인들이 어떻게 몰입을 할 수 있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면 가능하다. 약한 몰입도 성과가 있다. 기업의 경우 토론식 회의도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다.
-몰입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수십년간 해결 못한 난제에 도전해 모두 해결했다. 미해결로 남아있던 난제 중 하나인 세라믹의 비정상 입자 성장을 2개월 만에 해결했다. 논문을 발표하자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이 분야 권위자인 김도연 서울대 교수(현 포스텍총장)이 “당신 연구결과가 맞다”면서 같이 논문을 40여편 썼다. 2006년 세계 최고 학술지 미국 세라믹학회지 8월호 특집 논문으로 선정됐다. '저압 다이아온드생성 원리'도 이 과제를 맡은 연구원이 이직하는 바람에 내가 그걸 맡았다. 내 전공도 아니었다. 1년 6개월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답을 찾고 보니 교과서가 틀렸다는 걸 발견했다. '하전단 나노입자 이론'이란 논문을 발표했더니 아무도 안 믿었다. 4년간 게재를 거부당했다. 뒤에 외국 저널에 게재했다. 2016년 세계에서 가장 큰 출판사인 엘세비어에서 재료백과사전을 만들면서 교과서가 틀렸으니 이를 바로 잡아달라고 해 새로운 개념으로 지난해 책을 냈다. 선진국보다 몇 십년 앞선 결과다. 또 현택환 서울대 교수가 단분산 나노 입자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미국 CNN이 뉴스로 보도했다. 대단한 개발이었다. 현 교수가 나노입자가 형성되는 원리를 밝혀달라고 요청해 일주일간 몰입해 밝혀낸 적이 있다.
-몰입을 실천하면 삶이 어떻게 변하는가.
▲몰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 집중상태다. 그런 상태로 두뇌를 100% 활용하면 자신의 일에 소명의식을 갖고 삶을 의미 있게 산다. 삶이 변하고 가치관도 바뀐다. 생각과 몰입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최고 경쟁력이다. 현대인들에게 삶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몰입이다.
-몰입을 방해하는 잡념은 어떻게 극복하나.
▲잡념이 생기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잡념과 싸우면 안 된다. 신경 쓰지 말고 문제만 계속 생각해야 한다. 꾸준히 집중하면 잡념은 극복하게 된다.
-학생 지도에도 몰입을 적용하나. 그 성과는.
▲몰입능력이 곧 연구능력이다. 같은 학점이지만 학생마다 차이가 있다. 몰입은 생각의 마라톤이다. 어릴 적부터 마라톤을 안 해 본 사람에게 42.195km를 뛰게 할 수는 없다. 1km부터 시작해야 한다. 몰입을 지도한 한 사람은 사법고시에 합격해 나보고 주례를 부탁해 주례를 서 줬다. 또 한 사람은 창의성 몰입으로 창의성로봇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대학에서 명예학생으로 선정됐다. 대학원생 중 한 사람은 몰입훈련으로 취업한 회사에서 해결사로 인정받았다. 또 한 사람은 회사에서 3년 연속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내가 바빠 직접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메일이나 전화로 몰입지도나 상담은 해준다.
-몰입도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몰입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시카고대학 심리학 교수는 '몰입의 3요소'를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일의 난이도와 실력의 균형이 맞아야 하며 △ 피드백이 빨라야 한다고 말했다. 몰입은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몰입장벽을 넘는데 3일이 걸린다. 몰입도를 높이는 일은 마치 담배 연기가 퍼지는 것을 한곳으로 모우는 것처럼 쉽지 않다. 첫째 날은 몰입도가 30% 수준이고 둘째 날은 60-70%, 셋째 날은 100%가 된다. 몰입도는 노력으로 올릴 수 있다. 장벽은 위기감으로 넘어야 한다. 100이 돼야 장벽을 넘을 수 있다. 몰입 원리는 1초도 쉬지 않고 생각하면 몰입도가 올라간다. 몰입은 훈련이다. 처음에는 10~20분씩 하면서 성공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길이지면 몰입도는 올라간다. 기업 CEO나 대기업 임원들은 몰입도가 높다. 늘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서 그렇다. 처음에는 쉬운 문제부터 시작하고 차츰 시간을 늘려야 한다.
-기업 경영에 몰입을 도입한 사례가 있나.
▲모 제조업체의 경우 20년간 해결 못한 문제를 일주일 만에 해결했다. 직원 몰입을 도와 기업 문제를 8일 만에 해결한 적도 있다. 이 밖에도 사례가 많다. 누구나 몰입을 실천하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직장인의 경우 업무에 흥미를 가져 기업 매출증대와 인간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 기업 CEO부터 몰입을 실천했으면 좋겠다.
-미래교육에 몰입을 적용할 수 있나.
▲우리 교육은 주입식이다. 생각을 안 한다. 앞으로 교육은 창의성 교육을 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들이 창의성 교수 모임을 만들고 지난해 1월 한국 창의성학회를 출범했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항상 생각한다'다. 취미는 테니스를 즐겼는데 요즘은 무릎이 안 좋아 걷기와 골프로 바꿨다.
황농문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선임과 책임연구원, 미국 국립표준기술원과 일본 금속재료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서울대 신소재공동연구소장과 한국금속재료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와 한국창의성학회 의장이다. 저서로 '공부하는 힘'과 몰입1, 몰입2 등 다수가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