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과학기술의 다양성과 R&D 예타 조사의 진화

진화론의 거장 찰스 다윈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하거나 지능이 발달된 종이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변화는 늘 필연이며,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살아남는 데 중요하다.

최이중 전자부품연구원 선임연구원
최이중 전자부품연구원 선임연구원

과학기술의 변화가 빠르고 다양해지면서 국가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기존 예타 조사는 장기간이 소요돼 과학기술 특성보다 경제성 분석에 편중됐다. 이런 식으로는 급변하는 환경의 다양한 과학기술 포용에 한계가 있다.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R&D 사업의 예타 조사가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예산 당국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업무를 위탁 수행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는 오는 4월 17일부터 R&D 사업 예타 조사를 실시한다. 지난 1월 공청회를 통해 개선 방향 전반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핵심은 예타 조사의 과학기술 전문성 강화를 위해 경제성 비중을 완화하고 사업 유형별로 중점 조사 항목을 차별화하는 것이다.

현장은 정부의 변화 방향을 반기는 분위기다. 국가 R&D 사업은 도로나 철도를 건설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성격이 다르다. 다양한 과학기술을 근간으로 기획된 국가 R&D는 불확실성과 비정형성이 크다.

이에 따라서 경제성 분석을 정교하게 수행하거나 고정된 틀로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 인식 아래 30~40%를 차지하던 경제성 비중을 10~40%(기초연구는 5~10%) 수준으로 완화하고 R&D 사업 유형에 따라 조사 항목을 차별화하겠다는 정부의 개선 방안은 설득력이 있다.

정부 개선안에 더하여 필자는 예타 조사에 좀 더 많은 다양성 확보 방안을 두 가지 제안한다. 생물이 다양성을 통해 환경에 유리한 개체의 생존율을 높이며 진화하듯 R&D 예타 조사가 성공 진화를 거두기 위해서도 다양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경제성 분석 방법론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 경제 관점에서 과학기술 관점으로 조사의 초점을 강화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경제성 분석은 한정된 국가 예산을 효율 집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사업 타당성 역시 그 혜택이 국민에게 전달되고 투자 대비 효과가 클 경우 확보된다.

이에 따라서 경제성 비중 축소와 병행해 국민에게 전달될 과학기술 효과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널리 적용되는 시장 기반 분석법에서 탈피, 비시장 가치까지도 분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둘째 예타 조사에 참여하는 자문위원의 다양성 강화다. 현재는 조사 대상 사업과 직간접 연관된 모든 전문가를 자문위원회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 경우 R&D 분야에 따라 분야의 전문성이 높고 폭이 좁은 경우 해당 분야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제외된다. 전문가의 풀이 제한될 수 있다. 이해관계의 충돌을 배제하면서도 자문위원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운영의 묘가 요구된다.

모든 생물은 진화하면서 생존했다. 다양성은 진화의 필수 요소다. 우리는 다양성을 통해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했다. 진화를 통해 생존할 힘을 기르고 미래 변화에도 새롭게 적응할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국가 R&D 예타 조사도 새로운 변화에 직면했다. 모리셔스 섬에서 멸종된 도도새의 비극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생태계마저 위기에 빠졌기 때문에 발생했다. 반면교사의 교훈을 준다. 한반도의 국가 R&D 예타 조사도 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여 진화할 때다.

최이중 전자부품연구원 선임연구원 matthew@ke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