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8 전시장에서 만난 국내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기업 사냥꾼' 손에 퀄컴이 넘어가면 통신 분야의 기술발전 속도가 저하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11월 퀄컴에 1300억달러 규모로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퀄컴은 인수가가 낮다며 거절했다. 이후 브로드컴은 퀄컴 이사회 교체 카드를 꺼내들고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브로드컴은 오는 6일(현지시간)로 예정된 퀄컴 주주총회에서 11명의 이사진 가운데 자사가 추천한 6명의 인사를 이사회에 앉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계획대로 절반 이상의 이사회 자리를 확보하게 된다면 퀄컴은 브로드컴의 자본에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퀄컴이 올해 MWC에서 예년보다 많은 제품, 협력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우리 잘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날린 것도 이 같은 표 대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브로드컴의 성장 전략은 M&A와 경영 효율화다. 이익을 극대화해 회사 가치(주가)를 올린 뒤 증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 다른 기업을 다시 매입하는 전략이다. 이른바 '금융공학'적 방법으로 성장해왔다. 브로드컴의 전신인 아바고는 지난 2013년 스토리지와 네트워크 칩 전문업체 LSI를 66억달러에 인수했다. 이후 LSI의 플래시스토리지 사업을 시게이트에, 네트워킹 부문을 인텔에 매각했다. 브로드컴을 인수하고 난 뒤에는 사명을 브로드컴으로 바꾸고 무선 사물인터넷(IoT) 사업을 사이프레스에 매각했다.
미국 반도체 전문매체 EE타임스는 퇴사한 브로드컴의 엔지니어와 인터뷰 기사에서 “핵심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연구개발(R&D) 비용이 삭감되면서 많은 엔지니어가 브로드컴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아바고가 브로드컴을 인수한 뒤인 2016년 회계연도의 근본 매출(개별 회사 매출을 합친 값)은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순이익은 두 배 증가한 30억달러를 기록했다. 구조조정과 R&D 감축에 따른 결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 결과 브로드컴 주가는 지난 5년 사이 8배나 껑충 뛰었다.
이 같은 몸집 불리기와 구조조정은 단기 투자자에게는 좋을 수 있으나 장기로는 아니다. 특히 급변하는 통신칩 기술 분야 R&D에서 허리띠를 졸라맨다면 이는 모든 업계에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때문에 합병을 반대한다는 것이 국내 통신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합병이 성사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중국 스마트폰 업체 오포와 비보, 샤오미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재해 보도했다. 셀룰러와 와이퍼이 등 무선통신 칩 시장을 브로드컴이 장악하면 가격 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때문에 브로드컴 계획대로 절반 이상의 이사진을 확보해 합병을 추진하더라도 각국의 승인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반도체 장비 업체 1위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도 4위 도쿄일렉트론을 합병하려 했지만 각국 승인에서 실패했다. 브로드컴과 퀄컴이 이 같은 길을 걷는다면 이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