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눈먼 돈의 생태계

2년짜리 국책 과제가 시작된다고 가정해 보자. '정부, 무슨 상용화 사업에 얼마 투자'라는 식으로 보도 자료가 나온다. 수입 대체 효과 등 장밋빛 전망이 담긴다. 언론은 그 자료를 받아 정리해 보도한다.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국책 과제는 시작된다.

[기자수첩]눈먼 돈의 생태계

2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나. 담당 공무원은 자리를 옮긴다. 기사를 쓴 기자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 있을 가능성이 짙다. 2년 전에 진행한 그 과제가 잘됐느냐고 물어 보면 '그게 뭡니까'라는 반문이 돌아온다. 어떻게 진행됐는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대표 사례가 2011년부터 진행된 '스타팹리스' 사업이다. 정부 돈, 정확하게는 세금을 끌어 모아 개발한 품목이 지금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스타 팹리스는 과연 탄생했을까.

국책 과제를 검색하는 정부 포털이 있다. 그러나 이 사이트를 관통하는 운영 철학은 '알려 하지 말라'다. 진행 상황과 결과를 제대로 아는 이는 당사자와 평가 기관이다.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모두가 입을 닫는다.

올해 초 정부의 한 기관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특정 과제를 진행한 어떤 회사가 연구비를 다른 곳에 유용하다 감사에서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보 공개 청구는 거절됐다. 감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그것이 끝났을 때 정보 공개 청구를 다시 하라는 담당자의 답신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재차 정보 공개 청구서를 작성하고 있다. 몰라서 그렇지 그런 회사가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정부 연구비를 유용했다면 이것은 무조건 외부에 알리는 어떤 법률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가혹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실패한 프로젝트 역시 알려져야 한다. 벌점 같은 것이 쌓여서 다음 국책 과제를 받으려 할 때 불이익이 있긴 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 자금이 '눈먼 돈'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하다. 특정 분야의 어떤 '분'은 “정부가 더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그런 말을 수시로 하는 '분'들이 참 뻔뻔하다고 느껴진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