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이명박 전 대통령간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은 13일 퇴임 5년 만에 피의자로 검찰에 소환됐다. 이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20여개에 달한다. 이 전 대통령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같은 날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도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 이들 재판결과는 향후 이 전 대통령 운명을 가를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혐의만 20여개…팽팽한 줄다리기
이날 조사는 17대 대통령 선거 때 다스 등 차명재산을 누락한 혐의 등 일부 공소시효가 끝난 2개 혐의를 빼면 18개 안팎 혐의에 관해 이뤄졌다.
주요 혐의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유용 △다스 실소유·경영개입 △인사·공천청탁 뇌물 △차명재산·비자금 조성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5가지로 추려진다.
최대 쟁점은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 불법 자금을 수수했는지, 이를 이 전 대통령이 인지했는지, 다스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다.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 전제했다. 삼성이 대납한 다스 소송비용 60억원이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4억5000만원과 ABC상사 손모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다스 소유주가 아닌 만큼 모든 혐의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이 이 전 대통령 사위 이상주씨와 형 이상득 씨에게 건넸다는 의혹을 받는 20억원대 금품도 제3자 뇌물죄 적용 가능성이 있다. 이를 인사 관련 부정한 청탁으로 보면 최종 인사권자인 이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알지 못하거나 무관한 자금'이라고 반박했다.
조사 결과 이 전 대통령이 다스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검찰은 이 전 대통령에게 배임·횡령 등의 죄도 적용할 수 있다. 다스 비자금 조성 과정에 이 전 대통령이 개입한 의혹이 확인되면 대통령 권한을 남용한 직권남용죄도 피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제기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일체의 자금 수수와 관련한 사실을 몰랐다는 설명이다. 다스 경영 문제로 조언한 적은 있지만, 다스는 형 이상은씨 등 주주의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은 그간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핵심 측근의 진술과 이 전 대통령 소유의 영포빌딩 내에서 발견된 다량의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 전 대통령 측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검찰은 질문지만 120여쪽 분량을 준비했다. 지난해 최순실 사태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질문지 100여쪽을 넘었다.
혐의가 많은 만큼 밤샘조사는 불가피하고, 박 전 대통령의 조사시간이었던 21시간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이 전 대통령이 조사 과정에서 주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 검찰이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검찰에서는 송경호 특수2부장이 이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수사를, 신봉수 첨단범죄수사1부장이 다스 의혹 수사를 맡았다. 특수2부 이복현 부부장도 신문조서 작성 등 역할로 참여했다. 이 전 대통령 측에서는 강훈·피영현·박명환·김병철 변호사가 돌아가면서 입회했다.
◇'집사' 김백준·'참모' 김진모 첫 재판…향후 재판 영향
이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는 시각에 'MB 집사'로 불렸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도 법정에 섰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2008년과 2010년 국정원에서 특수활동비 4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을 사건의 '주범', 김 전 기획관을 '방조범'이라고 적시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날 첫 재판에 앞서 “지금 이 시간에 전직 대통령이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이어지는 수사와 재판에서 사건의 전모가 국민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성실하고 정직하게 참여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같은 날 MB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참모진으로 근무했다가 구속기소 된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도 재판을 받았다. 그는 2011년 4월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을 국정원 특활비 5000만원으로 입막음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 전 비서관의 이 같은 행위를 국정원 예산 횡령으로 보고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대통령의 권한을 보좌하는 지위에서 돈을 받은 만큼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도 적용했다.
앞으로 이들 재판에서 나온 증언은 이 전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 혐의가 얼마나 인정되는지에 따라 이 전 대통령 조사 결과도 달라진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