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10>나폴레옹의 선택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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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12월 2일. 시간은 막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각자의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들과 참모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얼어붙은 자트차니(독일어로는 자찬) 호수 위로 퇴각하는 패잔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장병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서서히 팔을 들었다가 내렸다. 포대들이 불을 뿜는다. 흰색과 녹색 군복의 장병들이 호수로 빠져들고 있었다.

테스코(TESCO)에 혁신은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고객에 이익이어야 한다. 둘째 테스코는 경비 절감이 된다. 셋째 업무는 더 단순해져야 한다.

'혁신가설'의 저자 마이클 시레이지는 10년 동안 사례를 모았다. 세 가지 가운데 어떤 조건이 가장 어려웠을까. 결과는 의외였다. 고객 이득과 경비 절감엔 쉽게 통과했다. 문제는 단순함이었다. 절반이 이 단순한 요구에 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훈련 과신' 같은 여러 함정에 빠져 있었다.

첫째 혁신은 복잡하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단순함을 따지지 않는다. 직원들이 잘 습득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이 당연한 생각에 혁신은 한결 어려운 것이 된다. 성과는 점차 더뎌지고, 매뉴얼이란 것에 결국 발목이 잡힌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둘째는 훈련 지상주의다. 인재 부서는 복잡한 혁신 과제가 오히려 반갑다.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서서 훈련을 강조한다. 성적을 인사고과에 넣겠다고 한다. 이즈음 되면 혁신의 목적은 뒷전이 된다. 이제 이 뭔지 모르지만 복잡한 과정을 학습하고 실행하는 일만 남는다.

셋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최고기술책임자(CTO)나 최고혁신책임자(CIO)까지 있지만 혁신이란 대개 신제품이나 경비 절감을 말하는 것이다. 단순함의 가치를 따져본 적이 없기에 정작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피곤이 쌓여갈 즈음 누군가 새 혁신을 외치고, 이 사이클은 반복된다.

눈 덮인 슬라프코프(독일어로는 아우스터리츠) 평원에서 세 제국이 맞닥뜨렸다. 나폴레옹은 여기에 함정을 판다. 전선 오른편을 허술한 채 비워 둔다. 알렉산드르 1세가 미끼를 문 순간 모든 것은 힘의 법칙을 따라 흘러갔다. 나폴레옹에겐 한 가지 철칙이 있었다. 병력이 열세일수록 적은 목표에 병력을 집중한다. 그래서 나폴레옹군의 허점이란 대개 의도된 것이었다.

이날 아침 9시 전장에 드리운 안개가 걷힐 무렵 나폴레옹은 동맹군 중앙을 친다. 우익과 좌익에 증원한 탓에 정작 본진은 비어 있었다. 러시아 근위병이 분투했지만 결국 프랑스군에 밀려 자트차니 호수로 몰려갔다. 이 짧은 한 번의 전투에 3만6000명을 잃는다.

시레이지는 직원들에게 단순함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의 노동과 경험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것을 머릿속에서 나온 복잡한 무언가로 바꾸는 것이 과연 혁신일까. 유럽의 무수한 명장들이 지도 위에 펼쳐 낸 아이디어로 나폴레옹을 이길 수 없는 것도 이 탓 아닐까. 7만2000명과 중포 151문을 펼쳐 놓은 나폴레옹의 눈으로 전장을 한번 바라보자. 혁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