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디스플레이 기업에 대한 '퍼주기식' 지원을 줄일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에 대한 지원이 줄면 패널 생산량 확대에 제동이 걸려 급락하던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이 안정세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면에 국내 수요 감소로 중국으로 수출하던 장비·재료 등 후방산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29일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와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최근 중국 지방정부는 자국 기업에 제공하는 각종 지원제도에 대해 심사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데이비드 셰 IHS마킷 시니어 디렉터는 “중국 정부가 은행 부채와 레버리지를 통제하는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더 이상 은행과 정부로부터 대출 자금을 얻는 게 쉽지 않게 됐다”면서 “로욜과 고비전옥스(GVO), 심지어 BOE B17팹 등 건설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진단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는 이를 반영, 최근 투자 일정을 미루는 사례가 잦다.
IHS마킷에 따르면 에버디스플레이는 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라인 2단계 투자를 6개월 이상 지연했고, 차이나스타도 6세대 OLED T4 투자 계획을 6개월 미뤘다. 고비전옥스는 6세대 OLED 2단계 투자를 최소 6개월 이상, 톈마는 우한 6세대 OLED 1단계 투자를 최소 3개월 이상 각각 미뤘다.
중국 패널사가 투자 계획을 미룬 것에는 최근 나빠진 중소형 OLED 업황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중국 패널사의 디스플레이 투자 의지가 강한 만큼 실제로는 투자금을 대는 정부 기조 변화가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 지방정부에 대출 심사 강화, 은행의 연간 대출금액 축소, 지방정부 지원 프로젝트 심사 강화, 매년 토지 사용량 제한 등을 골자로 한 가이드라인을 주문했다. 이 같은 방침은 현지 디스플레이 기업의 투자 계획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 축소 움직임은 LCD 공급 과잉으로 중국 기업 실적도 하락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세계 디스플레이 생산력의 39%를 점유하면서 '디스플레이 굴기'가 어느 정도 완성됐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중국 디스플레이 증설 투자가 멈추면서 국내 산업계는 희비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중국산 저가 패널의 물량 공세가 꺾이면 공급 과잉도 빠르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패널업체의 수익성도 회복될 수 있다.
반면에 장비·부품·소재 등 후방산업계는 현지 투자 속도가 느려지거나 신규 진출 기업이 줄면 사업 기회가 감소하게 된다. 국내 후방산업계는 세계 1·2위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설비 투자 계획을 재점검하면서 올해 사업 기회가 큰 폭으로 줄었다. 대안으로 꼽히던 중국 설비 투자까지 축소되면 설상가상의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AP시스템, 테라세미콘, 에스에프에이 등은 올해 중국 사업 비중을 높였다. 국내 디스플레이업계가 연내 신규 설비에 투자하지 않을 가능성이 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 매출을 중국에서 확보하지 않으면 지난해 수준 실적 유지조차 어렵게 된다.
서원형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산업지원본부장은 “중앙정부의 가이드라인은 각 지방정부나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게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면서 “아직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에 대한 정책이 구체화돼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내놓은 가이드라인이 신규 디스플레이 공장 설립에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