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로 촉발된 중국의 한국산 배터리 홀대가 악순환을 낳고 있다. 최근 방한한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사드 보복 조기 해소를 시사했지만 중국 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보조금 지원 전기자동차 목록에는 중국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만 포함됐다. 장기간 보조금 지급 제외 조치로 현지 자동차 제조사가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아예 생산하지 않아 보조금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단기간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산 배터리 거래를 중단한 중국 자동차업계가 이미 1~2년 단위로 중국산이나 일본산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2020년 이후에야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 전기차 출시가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공신부)가 4일 발표한 2018년 3차 신에너지 자동차 추천 목록에는 94개 기업이 만든 304개 모델이 새롭게 포함됐다. 그러나 선정된 모델에는 LG화학이나 삼성SDI 등 국내 업체의 배터리를 탑재하지 않았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방한한 양제츠 위원이 △단체관광 △중국 롯데마트 매각 △선양 롯데월드 프로젝트 재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문제 등 사드 보복 조치가 이른 시일 안에 해소될 것이라고 밝혀 높아진 기대감이 빗나갔다.
보조금 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장기간 보조금 지급 제외 조치로 현지 자동차 제조사가 한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아예 생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보조금 지급 목록 발표에 앞서 현지 제조사가 제출한 신청 목록에도 한국 배터리 장착 차량은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차별 조치 해제를 공식화하더라도 한국 업체의 배터리를 차기 전기차 모델에 탑재하려면 개발 단계부터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안 돼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국내 업계에서는 “정부에서 보조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도 개발 기간이 필요한 전기차 산업 특성상 단기간에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중국 제조사와 한국 업체 간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만큼 2020년 이후에 출시되는 전기차에 한국산 배터리가 탑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올해 공신부가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에 따라 보조금에 차등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 보조금 정책을 발표한 만큼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술력이 담보되는 한국 업체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개선 분위기가 감지됐고, 올해 들어서는 중국 제조사들과 2020년 이후 프로젝트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보조금 기준이 높아진 반면에 아직까지 중국 업체 가운데에서는 CATL 외에 기술력이 높은 업체가 없기 때문에 중국 제조사도 한국 배터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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