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택의 과학국정]<15>과학정보로 자주국가 도약을

[임춘택의 과학국정]<15>과학정보로 자주국가 도약을

국가정보원이 간첩 조작 사건, 댓글 공작에 의한 선거 개입, 특수활동비의 무분별한 유용 등으로 불신을 자초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기무사령부도 댓글 공작, 대국민 심리전 등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 관련자가 처벌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정보기관은 민주화되지 않는다.

2년 전에 제정된 테러방지법을 국민은 깊이 신뢰하고 있지 않다. 정보기관 감청이 가능한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하는 국민이 많아진 것이 예다.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이 못 믿는 정보기관은 존립할 근거가 없다. 국가 안보마저 위태로워진다. 어떻게 정보기관이 민주화되고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첫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위법 행위는 처벌된다는 교훈 확립이다. 상명하복 정보기관 속성상 명령을 받은 하급자는 면책되는 게 관행이다. 침묵의 카르텔이 만들어진 경로다. 모든 위법 관련자를 처벌하면 카르텔 유지가 어려워진다. 정보기관원에게 위법 명령 거부를 의무화하자. 강력한 내부고발자 보호·포상제도도 마련하자. 이는 검찰·군도 마찬가지다.

둘째 대통령의 정보기관 통제를 서면으로 하고 이를 국회가 확인하자. 헌법 제82조에도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하게 돼 있다. 대통령이 국정원, 군, 경찰 등 정보기관에 임무 부여 시 국회 정보위에 통보하게 하자. 그러면 일체의 구두 지시나 비공식 지시는 불법이 된다. 이는 미국이 정보기관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방법이다.

셋째 해외·국내, 군사·민간, 국민·간첩의 경계가 모호한 대테러 임무의 사후 통제다. 국정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도 이 문제는 남는다. 잠재 스파이에게 허락받고 정보를 수집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전 통제는 곤란하다. 지금도 개인 정보 수집 시 사후에 통보하게 돼 있지만 편법 운영으로 유명무실해졌다. 여야·시민사회가 추천한 감사관이 정보기관의 개인 정보 수집을 감독하고, 국회와 청와대에 보고하게 하자. 간첩 조작과 정치 간여 방지책이다. 다만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보 취급자의 비밀 정보, 개인 정보 유출은 엄히 처벌하자.

정보기관 민주화는 선진국이 되는 필요조건이고, 정보기관 과학화가 충분조건이다. 예컨대 미국의 과학 신호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SA/CSS)은 전통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 인원의 3배에다 매년 예산 8조원을 사용한다. 영상정보기관인 국가지리정보국(NGIA)도 정찰위성을 운영하는 국가정찰국(NRO)과 함께 대표 과학 정보기관이다. 미국은 마약단속청(DEA)과 군 정보기관을 포함해 총 16개의 정보기관을 두고 있다. 어떤 국가도 미국같이 크고 다양한 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우리도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선결 과제만 해결하면 정보기관의 전문화와 과학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

첫 번째로 국가급 신호정보기관과 영상정보기관 발족이다. 현재 국정원과 함께 국방부 부서에 불과한 정보기구를 반독립시켜서 과학 정보기관으로 만들자. 자체 연구개발 조직도 갖춘다. 수학, 공학, 과학을 전공한 민간 전문가 중심이다. 미국처럼 정보기관장을 과학기술 전공의 현역 장성이 맡을 수도 있다. 국방부가 예산과 장비를 대고, 국정원이 정보 임무를 조정한다.

두 번째로 사이버 보안 능력을 대폭 강화해서 정부기관의 블록체인·클라우드 접속을 보장하자. 공무원이나 인가를 받은 사람은 세계 어디서든지 정부 비밀 자료 열람과 사용이 가능해진다. 그 대신 열람·복사 기록과 해킹 접속을 모니터링해서 정보 오·남용과 외부 침입을 감시한다. 정상 사용자는 보안을 의식하지 않고 편리하게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공직자들도 '움직이는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다. 부처 간 정보 공유, 공공 데이터 개방, 전자정부 4.0의 성패도 사이버 보안에 달려 있다.

미국은 영국, 이스라엘, 한국, 호주 등 우방국 정보 수준에 따라 정보 교류 협력을 차별화해 왔다. 정보 능력이 있어야 미국의 정보 동맹이 될 수 있다. 미국은 한국과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 안보 분담을 원한다. 우리가 1조원을 들여 고해상도 백두·금강 항공 정보와 아리랑 3A호·5호 위성 정보를 강화하자 주한미군 U-2기 운영을 줄인 것이 한 예다. 정보 자주화는 한·미동맹 강화의 지름길이다.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ctri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