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영향으로 주요 제조사들이 일제히 미국 내 세탁기 소비자가격을 인상했다. 제품은 그대로인데 가격은 오르면서 세이프가드 최종 피해자는 소비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런 가운데 세이프가드를 청원한 월풀은 1분기 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북미에서만 이익이 증가, 눈길을 끌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월풀, GE, LG전자 등이 미국 시장에서 일제히 세탁기 가격을 인상했다.
GE는 유통업체에게 서한을 보내 4월 말부터 세탁기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비용 상승으로 인해 가격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LG전자는 3월 8일부터 미국 시장 세탁기 가격을 4~8% 인상했다. 제품당 평균 인상 가격은 약 50달러다.
삼성전자는 명확한 가격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업계는 조만간 삼성도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에 설립한 세탁기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지만 미국에서 판매하는 전체 물량을 소화하기 어려운 정도로 수입 제품으로 인한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 업체들이 모두 가격을 인상하자 월풀 역시 가격 인상 카드를 꺼냈다. 최근 월풀은 2분기에 세탁기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월풀 관계자는 “원자재가 인상, 투자 확대 등으로 비용이 늘어나면서 세탁기 가격을 인상한다”면서 “2분기부터 세탁기와 건조기 모두에 가격 인상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월풀은 베스트바이 등 주요 유통업체에서 진행하던 세탁기 할인 판매를 대부분 중단하고 일부 저가 재고 모델만 할인하고 있다.
업계는 세이프가드 발동 이전에 우려한 세탁기 가격 인상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반응했다. 가격 인상으로 인한 피해가 미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문제도 현실화됐다고 지적했다.
주요 업체가 모두 가격을 인상했지만 LG전자가 가격을 인상하는 것과 월풀이 가격을 올리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LG전자는 세탁기 미국 수출 시 20~50%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회사가 관세 부담 가운데 상당 부분을 감수하더라도 일정 부분 가격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반면 월풀은 관세 부담이 없음에도 가격을 올려 이익을 높이려 한다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월풀은 1분기에 EBIT(이자·세전이익)가 전년 동기 대비 36.6%나 급감한 가운데서도 북미에서만 이익이 증가했다. 이 기간 월풀은 유럽 및 중동·아프리카(-15.5%), 아시아(-23.3%), 남미(-13.5%)에서 모두 EBIT이 급감하고 북미에서만 4.8% 상승했다.
국내 세탁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월풀이 주장하는 원자재가 인상이나 투자 증가는 모든 세탁기 제조사에 동일하게 작용한다”면서 “국내 업체는 이와 별도로 고율 관세 부담이 더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분기 월풀 실적을 토대로 보면 2분기 이후 북미 이익이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세이프가드로 인한 피해가 미국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