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애플코리아 불공정행위 자정조치 '0건'

서울 시내 한 매장에서 시민이 애플 아이폰을 보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서울 시내 한 매장에서 시민이 애플 아이폰을 보고 있다.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애플코리아가 정부를 상대로 원하는 방식대로 아이폰 개통 업무를 추진하려고 시도한 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중국·인도 등 국가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면 정부에 예외적용을 주장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애플코리아 불공정행위 문제가 여러 차례 거론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정조치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은 것도 애플코리아에 유독 관대한 우리나라의 느슨한 대응과 무관치 않다고 덧붙였다.

◇자정조치 0건

애플코리아가 2009년 우리나라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이후 약 10년간 불공정행위로 지적된 것은 10가지를 상회한다. 국회 국정감사·규제기관 조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됐지만 애플코리아가 자정조치에 나선 사례는 전무하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애플코리아 불공정행위 문제가 수차례 지적됐지만 단 한 번도 자정조치 된 사례가 없다”면서 “이통사는 애플코리아와 사안별로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라도 거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애플코리아는 여전히 TV광고에 이통사 로고를 1~2초가량 노출하는 조건으로 광고비를 이통사에 떠넘기고 있다. 아이폰 국내 출시 때마다 열리는 대규모 행사비 역시 전적으로 이통사 몫이다. 이통사는 휴대폰 대리점·판매점에 붙이는 아이폰 포스터 문구·개수·부착 위치 등도 여전히 애플코리아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아이폰 출시일·출고가를 독단적으로 결정, 일방 통보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자급제 아이폰과 이통사 아이폰 가격 불균형 현상은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인다.

이통사는 애플코리아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춰 아이폰을 발주해야 하고 애플코리아가 선제적으로 아이폰 출고가를 인하하더라도 재고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 휴대폰 매장에서 아이폰 박스를 개봉했는데 불량품이 나오면 이통사 사내 판매 물품으로 전환해야 하며 아이폰 무상수리비용도 대납하고 있다. 알뜰폰은 애플코리아로부터 아이폰 신제품을 공급 받지 못하는 이유를 듣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 제재 임박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애플코리아가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불공정거래 행위를 관행처럼 지속했다고 판단, 제재를 준비 중이다. 공정위가 애플코리아에 10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과거처럼 '시정조치'로 끝나는 수준은 아닐 거란 전망이다.

공정위는 그간 애플코리아의 불공정 사후서비스(AS) 약관을 고치도록 하는 등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는 효과를 이끌어낸 적도 있지만 대부분 시정권고에 따른 '애플 자진 조치'로 문제를 마무리했다. 애플코리아에 직접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강도 높은 제재가 이뤄진 적은 없다.

공정위는 2013년 10월 애플코리아가 하드웨어 품질 보증서에서 스크래치 등 제품 표면상 결함에 품질보증을 해주지 않고 하자로 교환해 준 제품에 품질 보증기간을 부당하게 단축한 불공정약관 시정을 명령했다. 2014년 7월에는 앱스토어 일방적 계약 변경, 가격 인하 상품 및 인앱 구독에 관한 환불 불가 약관 조항 등을 시정하도록 했다.

2015년에는 기기 수리 취소를 못하게 하고 제품 반환을 거부하는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공인서비스센터 약관 조항 시정을 조치했다. 2016년 4월에는 애플코리아가 사전 통지 없이 공인서비스와 수리 위·수탁 계약을 해지하거나 위탁 업무 범위를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약관 조항 시정조치로 문제를 종결했다.

◇약관 꼼꼼히 봐야

공정위의 애플코리아 제재가 임박한 가운데 애플코리아가 안내한 서비스 약관에 불공정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은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애플코리아는 우리나라에서 중대한 사안을 공지할 때 부정확한 한국어 표현으로 뭇매를 맞은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애플코리아가 '애플 본사 방침대로 번역·공지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전문가는 여전히 애플코리아 서비스 약관에 해석이 애매한 문구가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제재에 앞서 애플코리아 서비스 약관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애플코리아 수리 이용 약관.
애플코리아 수리 이용 약관.

애플코리아가 홈페이지에 안내한 '애플 수리 이용 약관(한국 리테일 수리)' 5-1번에는 “애플은 프로그램 또는 데이터에 대한 위험 또는 손실 없이 제품을 수리할 수 있거나 데이터 기밀을 유지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증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소비자가 아이폰 수리를 맡긴 이후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된다 하더라도 애플코리아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애플코리아는 수리 이용 약관 6번에 “제품 수령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통지한 후 60일 이내에 제품 수령 및 전체 비용 지불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애플은 관련법에 따라 애플에서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사용자 제품을 처분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사용자가 '유기한 제품'이라고 규정하면서도 '관련법'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다.

이는 국내 제조사 정책과 대조된다. 삼성전자·LG전자는 소비자가 맡긴 AS 제품을 '유기한 제품'으로 전환하는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삼성전자서비스는 “AS 제품 수령 기간을 따로 정해 놓고 있지 않다”면서 “AS 제품을 찾아가지 않을 경우 센터별로 해당 고객에게 지속 연락해 제품을 안전하게 수령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2016년부터 시작된 공정위의 애플코리아 불공정행위 조사 결과와 제재는 향후 관련 시장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현재까지 지적된 문제는 물론, 애플코리아의 불공정한 서비스 약관 등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시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