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다. 엘리엇, ISS 등 외국계 자본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 자문사에서 일제히 '반대' 의견을 내면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주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보완된 방안으로 재추진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21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각각 이사회를 열어 현재 체결되어 있는 분할합병 계약을 일단 해제한 후 분할합병 안을 보완·개선해 다시 추진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29일 열릴 예정이었던 양사 임시 주주총회는 취소됐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사업구조와 지배구조 개편 안에 보내주신 많은 관심과 조언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그동안 그룹 구조개편안 발표 이후 주주 분들과 투자자 및 시장에서 제기한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충분히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28일 현대모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고 현대차와 기아차로 이어지는 단순 구조로 전환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지배구조 재편 방안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따르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0.61 대 1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현대모비스의 존속 부문과 분할 부문 비율은 순자산가치 기준 0.79 대 0.21이다. 현대모비스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의 경우 변경 상장이 완료되는 시점에 현대모비스 주식 79주와 현대글로비스 주식 61주를 교부받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개편 안이 자동차 사업 부문별 전문성을 강화해 본연의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순환출자 등 국내 규제를 모두 해소하는 최적의 안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특히 재편 과정에서 대주주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안을 채택함으로써 재편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시장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3일 엘리엇 계열 펀드의 투자자문사인 엘리엇어드바이저스홍콩(이하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달 23일에는 현대차그룹 이사회에 '현대 가속화 제안(Accelerate Hyundai Proposals)' 서신을 보냈다. 현대모비스를 현대글로비스가 아닌 현대차와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할 것을 제시했다. 또 자사주 소각, 주주환원정책 강화 등을 요구했다. 결국 이달 11일에는 최종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이후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라스 루이스는 분할·합병안에 반대를 권고했다. 합병비율이 현대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또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 대신지배구조연구소도 주주들에게 반대를 권고했다. 지난 17일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까지 반대하면서 상황이 현대차그룹에 불리하게 됐다.
분할합병 주총안건은 참석주주의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받아야한다. 분할합병과 같은 첨예한 안건은 보통 80% 이상의 주주가 참석하는데,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최소한 54%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때 주총 참석률은 83.6%였다.
현재 기아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30.17%이다. 2대주주인 국민연금(9.82%)이 찬성을 해도 40%에 불과하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48.6%에 달한다. 나머지 8.7%는 국내 기관이나 개인이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80%의 주주가 주총에 참석하면 현대차그룹은 기존 방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14%의 찬성표를 외부에서 끌어와야 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은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하여 개선토록 할 것”이라며 “어떠한 구조개편 방안도 주주 분들과 시장의 충분한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