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 공작기계를 주문하면 1년 6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최근 공작기계업계에서 자주 듣는 얘기다. 국내 기업은 주문량 폭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일본 공작기계 기업을 부러워한다. 국내 공작기계 산업도 1분기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좋아진 여파로 호조를 보였지만 일본과 체감하는 정도가 많이 다르다.
부품 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 공장 자동화 확대 여파로 산업용 로봇이 생산 현장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부품 제조사 가운데 혜택을 보는 곳은 일부에 불과하다. 알맹이는 일본과 독일 정밀 부품 제조사가 차지하고 있다. 협동로봇은 가격 가운데 정밀 감속기만 4분의 1에 이른다. 일본 부품 제조사에 주문하면 6개월이 지나야 받을 수 있다. 국가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는 드론도 핵심 부품은 중국산이다. 드론업계는 “막대한 국가 지원금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격”이라며 개탄한다.
부품·소재·장비 산업은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 산업 가장 큰 적은 일본, 독일, 중국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한 소재 기업은 전자·자동차 산업 필수 소재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산했지만 지난해 적자를 냈다. 기업 대표는 “지난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가 호황이라고 했지만 대부분 과실은 대기업의 몫”이라면서 “더 많은 소재를 국산화할 수 있지만 자금이 부족하고 고객사 지원이 없어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겉으로 드러난 완성품에만 집중하고 후방산업에 소홀히 한 행태는 어제오늘이 아니다. 중국이 제조업 강국, 스마트공장이 화두로 각각 떠오르는 격변기를 맞아 뿌리산업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 스마트공장 등 거대 담론에 휩쓸리기보다 무엇이 경제에 실속이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껍데기만 차지하고 알맹이는 뺏기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육성 전략 대책을 체계화해야 한다.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