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실태조사·표준계약서로 '본사의 대리점 횡포' 막는다…입법·실효성은 과제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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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24일 발표한 '대리점분야 불공정관행 근절대책'(이하 대리점대책)은 작년부터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4대 갑을문제 종합대책'의 마지막 시리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작년 6월 취임 후 가맹·대규모유통·하도급 부문 종합대책을 발표·추진했다.

대리점 대책의 핵심은 표준대리점계약서(이하 표준계약서)를 활용한 '자발적 거래관행 개선'과 서면실태조사·직권조사를 기본으로 한 '적발력 강화'다. 업계 스스로 변화를 유도하는 동시에 법 위반을 엄중 감시·제재해 대리점 거래 관행 전반을 개선한다는 목표다.

그러나 표준계약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 확보가 어렵다. 이번 제시한 총 15개 세부과제 중 절반(7개)이 입법 과제라 국회 협력 없이는 정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공정위, 적발력 높인다…전담인력 부족은 '난감'

본사와 대리점간 불평등한 관계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2013년 '남양유업 사태'였다. 당시 남양유업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하고 물량을 밀어낸 사실이 밝혀지며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 요구가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대리점법)이 제정돼 2016년 12월 23일 시행됐다.

본사의 대리점 상대 횡포를 제재하기 위한 대리점법이 제정·시행됐지만 불공정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해 8~12월 대리점 거래 실태파악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번 대리점 대책을 수립했다.

공정위는 거래관행 개선을 위한 첫 번째 방안으로 '법 위반 혐의 적발시스템 강화'를 내세웠다. 매년 업종별 서면실태조사를 실시, 거래관행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발굴하고 직권조사 단서로 활용할 방침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의류 업종 등을 대상으로 실태조사에 나선다. 서면실태조사 결과 법 위반 혐의가 다수 인지되거나, 신고가 반복 이뤄진 사업자는 직권조사 할 방침이다.

최영근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은 “지난해 실태조사는 대리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며 “앞으로 매년 업종별로 서면실태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효과적 적발을 위해 대리점이 익명으로 본사의 법 위반 행위를 제보할 수 있도록 '익명제보센터'를 운영한다. 또 '대리점 분쟁조정협의회'를 통해 분쟁조정 신청내용과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 제도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선제적으로 파악·발굴한다는 목표다.

대리점법 금지행위의 세부유형을 고시로 지정, 규제의 명확성을 높이고 법 위반 행위를 효과적으로 적발한다. 일례로 현행 시행령상 금지된 주문 강요 등 방법 외에도 '별개의 상품을 묶음으로만 공급'해 대리점이 원하지 않은 상품을 구입하게 하는 행위도 구입강제로 규율한다.

'요주의 기업'을 중심으로 직권조사를 강화한다는 이번 대안은 시장에 던지는 시그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정기적 서면실태조사, 익명제보센터 운영은 본사의 법 위반 억지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공정위 전담인력 부족은 적발력 제고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과거 공정위는 대리점법이 새로 시행되는 점을 고려, 전담 과 신설을 추진했지만 소수 인력 충원에 그치고 말았다. 지금은 공정위 시장감시국과 서울사무소가 대리점법 관련 사안을 맡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이 새롭게 제정·시행됐기 때문에 이를 전담할 과 설치가 필요하다는 게 당시 공정위 입장이었다”며 “기대대로 되지 않아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표준계약서로 '자발적 개선' 유도

공정위는 감시·제재 강화만으로는 불공정 관행 근절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업계의 자발적 거래관행 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 건강한 대리점 거래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목표다.

눈에 띄는 대책은 업종별 '표준계약서' 보급이다. 표준계약서에는 업종별로 대리점 권익보호에 필요한 거래조건을 담는다. 지금은 '식음료'와 '의류' 등 2개 업종만 표준계약서를 마련했다.

새로운 업종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한편 기존 내용도 보완할 방침이다. 표준계약서의 활발한 보급을 위해 사업자단체, 대리점단체도 해당 업계 표준계약서 제·개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적근거를 마련한다.

최 과장은 “같은 대리점 사업이라도 업종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법으로 일률 강제하기가 어렵다”며 “표준계약서를 통해 자발적 개선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대리점에 안정적 거래기간이 보장되도록 업종별 적정 거래기간을 고려, 표준계약서에 최소 3년 이상 계약갱신요구권을 설정한다. 본사의 인테리어 변경, 판촉행사 참여 요구 등이 빈번한 업종은 표준계약서에 본사가 비용 일부를 부담하게 하는 조항도 설정한다. 본사가 인테리어 비용은 40% 이상, 판촉행사 비용은 50% 이상 분담하는 식이다.

공정위는 대리점이 단체를 통해 본사 불공정 행위에 대항할 수 있도록 대리점법에 대리점단체 구성권을 명문화할 방침이다. 대리점단체 구성·가입·활동을 이유로 한 불이익 제공을 금지하는 조항도 신설한다.

가맹점의 실질적 피해구제를 위해 '사인의 금지청구제'를 도입한다. 피해를 본 대리점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해당 행위 중지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기존 구입강제, 경제상 이익강요에만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악의성이 명백한 본사 '보복조치'에 확대 적용하도록 대리점법을 개정한다.

◇대리점법 개정, 표준계약서 실효성 확보는 '과제'

대리점 대책은 실행까지 적지 않은 걸림돌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입법 과제가 많아 국회 협력 없이는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하다.

대리점 대책은 5대 과제(△법 위반 혐의 적발시스템 강화 △불공정거래행위 엄중 제재 △업종별 거래관행개선 유도 △대리점 협상력 제고 △실질적인 피해구제 수단 확충)와 관련 15개 세부과제로 구성됐다. 15개 세부과제 가운데 7개는 대리점법 개정이 필요한 입법 과제다. 시행을 장담하기 어렵다.

걸림돌이 예상되는 대표 입법 과제로 '대리점단체 구성권 명문화'가 꼽힌다. 이는 지난 1월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7.6%가 찬성 의사를 보였을 정도로 대리점 요구가 많은 과제다. 본사에 비해 열악한 위치에 있는 대리점의 단체 구성권을 인정해 교섭력을 높인다는 취지다. 그러나 본사 반발이 예상돼 관련 대리점법 개정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입법과제인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등도 찬반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포함한 업종별 표준계약서 반영·보급은 실효성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준계약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도입을 '업계 자율'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위가 표준계약서에 담으려는 '최소 3년 이상의 계약갱신요구권' 등은 본사가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본사와 대리점은 대부분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있다.

공정위는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면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때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다. 대리점법을 개정해 본사와 대리점간 협약제도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하고, 표준계약서 도입 등 실적을 평가해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할 계획이다. 공정위가 자발적 도입을 기대하는 근거다.

공정위는 “계약갱신요구권 등 표준계약서에 반영되는 계약조건은 업종별 시행경과를 지켜본 후 법으로 규율할지 여부를 추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