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네?”
영화 '베테랑' 명대사다. 주인공 조태오는 권력을 등에 업고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신진그룹 재벌 3세다. 신진그룹 하청 업체 트럭운전기사(배 기사)는 화물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임금 420만원을 받지 못하고 일방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억울한 배 기사는 조태오를 찾아갔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처참히 구타 당한 후 죽음을 맞는다. 조태오는 배 기사가 회사에서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고, 영화는 진실을 밝히는 베테랑 광역수사대 활약을 조명했다.
안하무인 재벌 3세 갑질 행태는 현실에서도 큰 문제다. 뉴욕타임스는 국내 대기업 사건 소식을 전하면서 '재벌(chaebol)'과 '갑질(gapjil)'을 그대로 표기, 부끄러운 민낯을 만천하에 알렸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는 있어도 '갑질 할 사람'은 정해지지 않는다. 갑질은 철저히 환경이 만들어낸다는 근거가 있다.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팀은 1971년 가짜 감방 3개를 만들고, 대학생 참가자 24명을 선별했다. 연구팀은 간수 역할과 죄수 역할을 반으로 나눠 실험했다. 간수는 죄수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수 없고, 죄수는 간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실험 규칙을 제시했다.
간수 역할을 맡은 대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죄수 역할을 심하게 괴롭혔다. 잠을 재우지 않고 얼차려를 일삼았으며, 폭언과 욕설을 쏟아냈다. 2주로 예정돼 있던 실험은 결국 6일 만에 중단됐다. 간수에 대한 학대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짐바르도 교수는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닌, 썩은 상자가 사과를 썩게 한다”며 환경에 따라 인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인간이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주장도 있다.
애덤 갈린스키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인간이 권력을 가질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고권력자 그룹과 저권력자 그룹으로 나눠, 실험자 이마에 알파벳 대문자 'E'를 스스로 그려보게 했다. 고권력자 그룹은 33%가 자신이 쓰기 편한 방향으로 알파벳 E를 그렸고, 저권력자 그룹은 12%만이 편한 방향으로 E를 그렸다.
편한 방향으로 이마에 알파벳 E를 그리면 상대방은 거꾸로 된 알파벳 E를 보게 된다. 고격권자 그룹보다 저권력자 그룹에서 더 많이 상대방이 보기 편한 방식으로 알파벳 E를 그린 것이다.
대커 켈트너 버클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도 권력을 가진 사람한테 '공감능력 결핍증' 현상이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권력을 가질수록 남을 흉내 내는 버릇을 멈춘다는 점을 지적했다. 상대방이 웃으면 함께 웃고 상대방이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기 마련인데, 권력을 손에 쥘수록 이런 행동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켈트너 교수는 '선한 권력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권력에 대한 통념을 과감하게 뒤집었다. 권력이란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결정하는 힘이 아닌, 타인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정의했다. 사회에서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면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진정한 권력'이라고 역설했다.
영화 배테랑에서 조태오는 권력 사용법을 '복종'으로 해석했다. 켈트너 교수가 주장한대로 권력을 이해했다면 권력 사용법을 '상생'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잘못된 권력을 사용한 조태오를 잡은 서도철 형사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 죄는 짓고 살지 맙시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