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암호화폐·의료 빅데이터·O2O…혁신성장 골든타임 놓친 청와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암호화폐를 둘러싸고 벌어진 규제 논란은 정부의 혁신성장 콘트롤타워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해외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시범 서비스를 곳곳에서 도입하고 있다.

지난 1월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앞서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열린 차관회의에서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나온 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정반대로 바뀐 정부 입장에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박 장관 발언으로 2000만원을 돌파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단번에 1800만원까지 빠졌다. 이에 청와대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이나 확정된 사안이 아니며, 각 부처 논의와 조율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이 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1일 오전 9시 25분 현재, 비트코인은 829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2500만원까지 치솟았던 연초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투기 광풍은 꺾였지만, 정부는 여전히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방침을 내놓지 않는다.

불명확한 방침에 암호화폐 시장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OSCO), G20,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등 국제 사회에서는 암호화폐공개(ICO)를 증권 관련 법에 준해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각종 시범 서비스 도입이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정작 프라이빗 토큰 발행과 관련한 논의조차 공식석상에서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올해 초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부처 간 불협화음을 생각하면 정부에 업계 의견을 전달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1월 가상화폐거래소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정부가 지난 1월 가상화폐거래소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의료 빅데이터 활용도 청와대가 골든타임을 놓친 중요 과제 중 하나다.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에서 환자 의료정보 활용을 차단하면서 차세대 바이오헬스 시장 패러다임에 역행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초기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서는 규제 개선 대상으로 바이오헬스 영역 빅데이터를 꼽았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중심이 된 반대에 부딪히자 6개월이 지났지만 실행계획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컨트롤타워는커녕 관련 조직에서 전문가조차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 헬스케어특위에서 논의할 가장 큰 이슈가 데이터 규제임에도 데이터 전문가가 없다. 특위는 바이오 기업과 학계 인사로만 채워졌다. 청와대가 주도권을 쥐고 의료정보 자기결정권 보장과 모니터링 체계 구축 등 안전장치를 마련해 의료 빅데이터 활용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교통 문제 해결에서도 청와대는 손을 놓았다. 창업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관련 규제는 방치했다. 지난해 한 카풀 업체가 출퇴근 시간 선택제를 도입하자, 서울시는 이를 경찰에 조사 요청했다. 국회에서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한 카풀을 금지하자는 등 시대에 역행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동안에도 청와대는 갈등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카카오택시 호출수수료 관련 권고안을 내놓으며, 이제야 법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교통 O2O를 중심으로 스타트업이 대거 나오고 성공 사례도 이어지지만, 우리나라는 기존 사업자들 눈치만 보면서 수십 년 된 법만 끌어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난 1월 가상화폐거래소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정부가 지난 1월 가상화폐거래소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