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택의 과학국정]<19> 직장문화가 바로 소프트파워](https://img.etnews.com/photonews/1806/1077659_20180603132248_248_0001.jpg)
한국 직장이 위기다. 지금 그곳에는 오너와 상사의 횡포, 노조 와해 공작, 갑을 관계의 하청업체·가맹업체, 비정규직·비노조원과 직종·직급별 차별, 취업 청탁과 부당 면접이 판을 친다. 우리나라 직장인 과로사와 산업 재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습관성 야근과 주말근무로 근로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많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은 낮아서 선진국 절반에 불과하다. 대·중소기업 간, 직종 간, 최상·최하 직급 간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기업체 신입 직원의 30%가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1년 안에 그만둔다. 보수가 적더라도 공공기관에 취업하려는 공시생은 넘쳐난다. 청년실업률이 10%에 육박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직장인의 꿈이 됐다. 이대로는 한국 사회에 희망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 해소,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공공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임금 보전, 블라인드 면접, 청년 임대주택 건설 등은 이런 사회 위기에 대한 응급 처방이다. 이를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공정 경제 차원에서만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두를 아우르는 사람 중심 경제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직장은 생업 현장이고, 생활 터전이다. 직장생활이 고달프지 않고 즐거워야 선진국이다. 고질화된 한국 직장문화의 병폐 극복 방안은 무엇일까. 영국과 미국에서의 근무 경험을 토대로 제안한다.
첫째 인간관계 대신 시스템을 중시해야 한다.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의 폐단을 극복해야 한다. 출신 동문·지역·직종으로 나뉘는 패거리 문화가 문제다. 폭력조직(조폭)처럼 선후배 줄 세우는 것도 끝내야 한다. 그 대신 팀워크로 다져진 조직이 업무의 중심에 서야 한다. 역설이지만 시스템을 중시해야 사람 중심 직장이 된다. 미국 직장에 있는 인사자문위원회 도입이 필요하다. 약자와 소수자가 위원이 되는 포용 제도다.
둘째 수직관계 대신 수평관계로 변화해야 한다. 지식 사회에서는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공유하는 수평 기업이 강하다. 하급자가 책임과 권한을 많이 쥐어야 의사결정이 빠르다. 연공서열을 없애야 30대 대졸 상사 밑에서 일하는 60대 박사도 가능하다. 이런 문화에서 40대 회장과 총리도 나온다.
셋째 두 사다리 승진 시스템 도입이다. 승진을 해야만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선진국은 소수의 관리자 그룹만 승진 경쟁을 한다. 피라미드 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장이 목표다. 대다수는 직책 없이 직급만 승급하는 전문가 그룹에 소속된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과 경쟁할 뿐이다. 승진할수록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봉급을 더 준다 해도 승진을 마다하기도 한다.
넷째 로그식 업무 보상 시스템 도입이다. 10배의 성과를 내도 2배만 보상하는 식이다. 글로벌 직장의 리더는 의사소통, 업무기획, 통찰력·판단력이 뛰어나다. 큰 수익을 내도 보상은 팀원에게 많이 한다. 팀원들이 리더를 존경하는 이유다. 납세·병역도 귀족, 왕족, 특권층이 모범을 보이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
다섯째 사내 학교 강화다. 기술이 급변하고 시장이 개방된 지식경제 시대에 직장생활의 10~20%는 학습이다. 기관마다 업무 비밀이 있어서 사내 교육은 비공개로 운영된다. 대부분 부사장급 대우를 받는 멘토들이 교육을 책임진다. 전문가 그룹의 목표가 멘토인 이유다. 일부 국내 대기업엔 사내 대학이 있다. 직원 수가 적어서 설치가 어려운 중소·벤처기업에 사내 학교 플랫폼을 지원하자.
여섯째 업무의 과학화다. 선진 직장에서는 주 단위로 설계된 업무 모듈에 따라 일한다. 이는 연봉 책정과 승진의 근거가 된다. 클라우드로 접속하고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한다. 원격 유연 근무, 스마트워크화도 시작됐다. '과학 합리화로 국가를 운영'하는 과학 국정이 일반 직장에까지 확산돼야 할 때인 것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문화나 제도 같은 소프트파워가 경제나 군사력 같은 하드파워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영국 컨설팅 회사 포틀랜드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세계 20위로 평가했다. 10위권인 하드파워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대다수 국민이 일하는 직장문화가 관건이다. 초장수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직장문화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끌어올리자.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ctrim@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