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유엔(UN)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세계 식량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심각한 식량 부족에 시달린 곳은 51개 국가 1억2400만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48개국 1억800만명과 비교해 15%가량 늘었다. 대부분 전쟁과 자연재해,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식량부족을 해소할 기대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이 꼽힌다. 병충해나 더위 혹은 추위 등에 약한 유전자를 삭제한다. 단백질 함유량과 연관된 유전자 발현을 가속화해 영양소가 풍부한 작물을 만들거나 생산량과 연관된 유전자를 편집해 열매를 많이 얻을 수도 있다.
과학적 의미는 있지만 안전한 먹거리인지 논란이 거세다. 시민단체는 유전자 편집 작물 역시 유전자변형식물(GMO)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안정성 검증과 국민도 알 수 있게 표시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외부 유전자 삽입이 없는 유전자 편집 작물은 육종에 가깝다는 반박도 나온다. 식량자원, 미래 과학기술 확보와 안전한 먹거리, 알권리 가치가 충돌한다.
◇옥수수부터 넙치까지…종 개량 도구 '유전자 편집'
농수산 영역에 유전자 편집 기술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꽃이나 열매 크기, 색깔, 병충해 저항성 등 작물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특정 작물에서 확인된 유전자를 교정하고, 교정된 형질이 식물 모든 동족에서 나타나는지 확인한다. 다음 세대에 안정적으로 유전되는 것까지 확인하면 교정에 성공했다고 본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주로 사용된다. '카스9' 유전자 가위 절단효소는 가이드 RNA를 이용해 원하는 목표 유전자를 찾아 교정한다. 외부 유전자가 인위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육종과 유사하다. 다만 육종은 자연교배로 새로운 유전자 재조합이 이뤄지지만 유전자 편집 작물은 인위적 유전자 재조합이 발생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예측이 어려운 전통적 육종과 유전자변형(GM) 기술과 비교해 경제적이고 빠르다.
세계적으로 유전자 편집 작물 개발은 활발하다. 옥수수가 대표적이다. 2016년 듀폰 파이오니어 과학자는 탈렌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를 교정, 아밀로펙틴 함량을 높인 찰옥수수 개발에 성공했다. 아밀로펙틴은 음식, 접착제, 고광택 종이를 생산한다. 같은 해 미국에서는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곰팡이 옥수수 병충해인 깝무기균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 곰팡이 병충해 저항성을 갖도록 교정한 새로운 옥수수 작물을 개발했다.
2015년 미국 펜실베니아대 비제이 쿠마르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밀의 아미노산과 카로티노이드 생합성 관련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 2016년 미 MIT 펑 장 교수는 밀 알맹이 길이, 무게 관련 유전자를 편집했다. 생산성 향상 길을 열었다. 이 밖에 질병 저항성, 생산량 증가 등 유전자를 교정한 쌀, 토마토, 감귤 등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개발된다.
국내에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벼, 담배, 상추 등을 개량하는 데 성공했다. 농작물 특정 유전자를 잘라 내 병충해에 잘 견디는 작물을 개발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넙치 근육 성장 억제 유전자를 자르는 기술을 개발했다.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국내에서도 상추, 양배추, 대두, 토마토 등 다양한 작물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해 품종을 개량 중”이라면서 “전통적 육종방법의 안전성과 생명공학 기술을 결합해 식량자원 확보와 신산업 육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계·정부 “전통 육종과 큰 차이 없어”…규제 개선해야
2000년대 들어 GMO 안정성 논란이 본격화됐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한 작물도 GMO로 봐야하는 지 의견이 대립된다. 우리나라 '유전자변형생물체(LMO)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유전자 편집 작물도 GMO와 같은 규제를 적용 받는다. 농림수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등 관련 기관 통해 안정성, 환경 적합성, 인체 유해성 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학계는 유전자 편집 작물은 GMO보다 육종에 가깝다고 본다. GMO와 동일시하는 규제 역시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성택 단국대 식량생명공학과 교수는 “기존 GMO는 다른 유전자가 들어가지만 유전자 가위 작물은 염기서열을 바꾸거나 삭제한다”면서 “인위적으로 다른 종을 집어넣는 게 아니라 고유 형질을 유지하기 때문에 전통 육종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유전자 편집 작물은 외래 유전자 삽입 없이 유전자 발현과 네트워크로 나타나는 형질을 조절해 품종을 개량한다. 유전자 편집을 인위적으로 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내부 형질 전환은 육종에서도 충분히 발생 가능하다. 반면 GMO는 자연교배가 불가능한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삽입해 유전적 재조합을 만든다.
현행 LMO법은 '현대 생명공학기술을 적용해 인위적 유전자 삽입이 있는 작물'을 규제 대상으로 본다. '인위적 유전자 삽입' 해석은 유전자 편집까지 포함한다.
정부도 규제 개선 필요성을 공감한다. 기존 GMO와 유전자 편집 작물을 다르게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규제가 지속될 경우 검사 비용, 기간 등을 우려해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기술개발과 상품출시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식량문제는 물론 유전자 편집 기술 경쟁력 저하도 우려된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LMO처럼 새로운 유전자를 집어넣으면 새로운 단백질이 생성되기 때문에 독성, 알레르기 유발 등 여러 안정성 평가를 해야 한다”면서 “유전자 편집 작물은 새로운 유전자를 넣지 않는데다 자연환경에서도 충분히 발현 가능한 수준이라 안정성 평가 대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인위적 유전자 편집도 GMO, 국민 알권리 중요”
지난달 8일 청와대는 GMO 완전표시제에 대한 국민청원 답변을 내놨다. GMO 완전표시제를 시행할 경우 물가상승과 통상 마찰 우려가 있어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단체, 전문가, 관계부처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체를 구성해 개선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시민·소비자·학부모 단체는 일제히 반발했다. 그동안 기술적 문제로 표시하지 않았던 GMO를 통상마찰 문제로 확대해 표시제 시행을 유보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유다.
시민단체는 유전자 편집 작물도 GMO 일종이라고 본다. 인위적 유전자 조작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GMO 완전표시제 대상에 유전자 편집 작물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철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은 “유전자 편집 작물은 전혀 다른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논란은 적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위적 유전자 조작이 포함돼 GMO로 봐야 한다”면서 “사람이 기계나 기술로 생물에 변화를 주는 것은 철저하게 안정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GMO를 강력하게 규제한다. 유럽연합(EU)은 유럽식품안전청(EFSA)에서 각국에서 들어온 GMO 사업신청 위해성 평가를 실시한다. GMO를 이용해 생산한 모든 식품·사료에는 GMO를 표시하도록 규정한다. 우리나라는 GM 성분 비의도적 혼입률을 3%까지 인정하지만, EU는 0.9%가 넘으면 GMO 표시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식용 GMO를 연간 200만톤 수입한다. 국민 1명이 매년 40kg 이상 GMO를 먹는다.
시민단체는 GMO가 좋고 나쁨을 떠나 소비자 알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GMO 완전표시제 실시도 이 같은 목적이다. 유전자 편집 작물 역시 소비자가 인지하도록 표시해야 한다.
윤 국장은 “유전자 편집기술은 의료를 포함해 산업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는 이로운 기술”이라면서 “이 기술을 부정하거나 유전자 편집 작물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알 수 있고, 선택 가능하도록 표시를 해달라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조건 GMO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인지하게 표시해달라는 것이지만, 정부는 지속적으로 정보를 감추려고만 한다”면서 “정보를 감출수록 시민사회 불안감과 의심이 커져서 갈등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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