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대 자동차에 최초 적용된 조향장치는 자전거용 핸들이었다. 그 후 차축이 통째로 돌아가는 피벗식 핸들이 발명됐다. 하지만 고장이 잦아 실용성이 떨어졌고, 전륜 차축만 조향되는 장치는 1890년대 말 고안됐다. 이때까지도 자전거 핸들 모양 쇠막대기에 끈이 연결된 형태였고 지금의 둥근형태 조향장치가 등장한 것은 몇 년 후의 일이었다.
조향장치는 완전한 기계장치였으므로 육중한 차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향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힘이 들었다. 때문에 트럭이나 버스 등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상용차를 모는 운전자들은 몇 시간 운전 후 몸져눕기 일쑤였다. 1950년대 조향 동력을 엔진에서 얻어 유압으로 조작하는 파워스티어링 방식이 등장했다. 파워스티어링은 유압을 이용해 적은 힘으로도 차량을 쉽게 조향할 수 있어 많은 운전자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스티어링휠이 너무 가벼워지자 고속으로 주행하는 경우 작은 충격에도 심하게 조향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기술이 '속도감응형 유압조향장치'다. 이 장치는 말 그대로 속도에 따라 유압을 조정해 저속에서는 스티어링휠을 가볍게 고속에서는 무겁게 반응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러나 장치가 무겁고 가격이 비싸 주로 중대형 자동차에만 장착되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차량 내 컴퓨터라 불리는 '전자제어장치(ECU)' 기능이 고도화됨에 따라 유압이 아닌 모터로 스티어링휠을 제어하는 제품이 개발됐다. 운전자가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힘과 실제로 바퀴를 움직이는 힘 사이의 괴리를 실시간으로 계산해 모터가 조향력을 보조해주는 방식이다.
MDPS(Motor-Driven Power Steering)라고도 불리는 전동식 조향장치(EPS·Eletronic Power Steering)는 모터의 장착 위치에 따라 크게 C-Type, P-Type, R-Type 세 가지로 나뉜다. 각각 장단점 뚜렷해 차종별로 다른 타입의 MDPS를 장착하고 있다.
모터가 스티어링휠에 바로 연결된 컬럼에 달리는 C-Type의 경우, 구조가 단순하고 모터가 엔진룸 근처에 위치하지 않아 내구성 및 공간 확보가 유리하다. 반면 바퀴와의 거리가 멀고, 그 사이에 다양한 장치들이 들어가는 만큼 최적 응답성을 담보하기는 힘들다. 또 컬럼이 큰 힘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중대형차와 같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차량의 경우에는 사용이 제한적이다.
랙에 바로 연결돼 모터 구동력을 직접 전달하는 R-Type은 그만큼 효율과 출력이 우수하며, 조향감 튜닝이 용이해 조향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엔진룸 근처에 모터가 위치하기 때문에 공간 활용이 불리하고, 단가가 오른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R-MDPS는 중대형차종과 SUV에 주로 적용된다. 모터가 컬럼과 랙 사이의 피니언에 장착되는 P-Type은 C와 R 타입의 사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MDPS가 각종 운전자지원기술 및 자율주행기술 구현에 필수적인 장치로 거듭남에 따라 자동차 부품 업체도 MDPS 조향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기관 IndustryARC는 2014년 260억달러였던 전동식 조향장치 시장규모가 2020년에는 두 배인 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국내 최대 부품업체인 현대모비스는 지난 2005년 C-MDPS 양산을 시작으로 기술력을 축적해왔으며 2014년 P-MDPS를 LF쏘나타에 처음 양산 적용한 이래 K5와 쏘렌토, 그리고 최근 출시된 싼타페에도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현대·기아차의 스포츠 세단인 제네시스 G70과 스팅어에 독자 개발한 R-MDPS를 최초 공급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의 R-MDPS는 유럽 프리미엄 경쟁차종의 조향장치에 비해 출력이 44% 높아 고RPM 등 악조건에서도 조향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