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칼럼]한국형 레몬법, 실효 있으려면](https://img.etnews.com/photonews/1806/1085078_20180626130424_935_0001.jpg)
자동차 부품 수는 약 3만개에 이른다. 이제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과학의 총체라 할 정도로 모든 기술이 모였다. 환경성, 안전성, 편리성 등 요구 조건이 늘면서 더 복잡하고 긴밀하게 작동되다 보니 이제 자동차는 사용하기 편리하지만 고장 등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 됐다. 최근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대두되면서 해킹 등 어두운 부분도 커지고 있다.
이렇게 복잡해진 자동차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운용 문제점을 얼마나 메이커가 잘 대처해 주는지가 중요한 요소로 되고 있다. 자동차는 운용에 따라 '문명의 이기'도 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흉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신차 구매 후 문제가 발생하면 적절한 서비스가 기본으로 작용돼야 함에도 상황에 따라 '봉'이나 '마루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더 복잡하고 긴밀하게 움직이는 대상이다 보니 소비자는 문제가 발생하면 오직 메이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메이커나 판매자의 서비스 의지가 약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개입해서 대처하고, 문제 해결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 선진국은 이러한 대처가 적절한 데다 적극성을 띠고 있어서 중요한 벤치마킹 사례가 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수십 년 동안 워낙 압축된 발전을 하다 보니 자동차 문화 부문, 특히 자동차 서비스 부문이 아직 후진국 전형을 보일 정도로 왜곡됐다. 자동차는 절대로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게 대표한다. 주변에서 신차에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힘겹게 싸우는 소비자를 만나기가 어렵지 않을 정도다. 아예 포기하는 소비자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교환이나 환불을 요청해서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소비자가 메이커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법 및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아직 자동차 분야는 소비자 영역에서 가장 취약하다. 그만큼 소비자 피해가 심각하다.
지난해 미국의 자동차 교환 환불 대표 프로그램 '레몬법'을 벤치마킹해서 한국식 레몬법이 제정됐고,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필자는 이 법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절름발이 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형식에 그친 법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형 레몬법이 실효가 있으려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할까. 우선 징벌성 보상제 도입이다. 미국은 메이커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소비자를 위한 보상금뿐만 아니라 벌칙 조항에 따른 천문학 규모의 벌금을 국가에 내야 한다. 벌금이 조 단위일 정도로 막대한 경우도 많다. 메이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강력한 정부 차원의 경고다.
국내에는 소비자를 위한 징벌성 보상제가 전무한 실정이다. 메이커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없고, 문제가 커지면 벌금만 부담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를 판단할 전문가 집단도 운영하지 않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두 번째 소비자 측면에서 정부의 변화와 관련 제도 마련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나라는 운전자가 자동차 결함을 밝혀야 하는 구조다. 급발진 사고는 물론 신차에 문제가 발생해도 정비소에서 계속 오라는 연락만 하고, 굳이 나서서 교환이나 환불은 해 주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형 레몬법이 있어도 해당 사항이 아니라고 하면 소비자가 문제를 밝혀야 하는 만큼 교환이나 환불은 구조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재판 과정에서 자동차 메이커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 구조다. 메이커가 소홀하게 답변하면 결과와 관계없이 보상에 합의하게 된다.
특히 자동차에 한두 건의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 도로교통안전청(NHTSA) 등 정부 기관이 나서서 전문가 실사를 하다 보니 메이커나 판매자 입장에서 더욱 적극 소비자를 배려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크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