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사고'때만 ICT업종 특별연장근로 허용…업계 “대국민·안보는 대상서 빼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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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ICT 업종 '특별연장근로 허용' 방침에 대해 사실상 '재난·사고' 때만 제한 적용하겠다는 내용의 별도 지침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업계는 ICT업계 경영이나 근무 환경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 '생색내기'라며 반발했다. ICT업계는 해킹 등 재난 사고가 일어난 경우 특별 연장 근로는 종전에도 가능했다며 '대국민서비스·안보 부문 근로 시간 단축 대상 제외' 요구를 정부가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27일 정부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ICT 업종 등 특별 연장 근로를 허용하되 근로기준법 시행 규칙은 개정하지 않고 재난·재해 등 '특수한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ICT업계 근무 특성을 고려한 특별 연장 근로 허용이 아니라 사고 대응이나 긴급한 경우에만 예외로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 없이 별도 지침을 신설, 그 안에 '재난·재해·사고 발생 시' ICT 특별 연장 근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셈이다.

업체는 발주자 요구로 단기간에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해 밤샘 근무가 필요하거나 보안을 위해 24시간 관리 업무를 수행할 때는 특별 연장 근로를 인정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다.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특별 연장 근로는 '자연재해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허용한다.

시행규칙을 개정해서 특별 연장 근로가 가능한 범위 자체를 확대하면 ICT 업종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부는 시행규칙 변경 없이 별도 지침을 마련, '이에 준하는 사고'를 예시할 계획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언급한 서버다운, 해킹 등 사례가 지침에 명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에 표현된 '이에 준하는 사고'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다”면서 “업계·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빨리 지침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ICT 업계는 얼핏 이런 조치가 기업 의견을 대폭 반영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해킹 등 사고가 발생하면 현행 시행규칙을 근거로 특별 연장 근로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 역시 “지금도 신청이 있으면 특별 연장 근로가 가능하다”면서 “지침 신설은 정확한 판단 기준을 내려달라는 사업자 목소리를 반영,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ICT 업계에 빈번한 밤샘 근무, 프로젝트성 근무 등 특성을 반영해 근로기준법이나 관련 시행령·시행규칙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보안 관제, 대국민 서비스 분야는 근로 시간 단축 예외 업무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임 등 분야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인력 확충 등으로 풀 문제지만 보안·대국민서비스는 공공성이 짙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안 관제는 365일, 24시간 관리가 필수다. 야간·휴일 근무는 불가피하다. 문제 발생 시 피해가 막대한 금융·통신 등 대국민 서비스 역시 '52시간 틀' 내 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ICT 업계는 이런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적어도 국가 안보, 대국민 서비스는 근로 시간 단축 예외 업무로 지정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