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심해에 외계와 통하는 포털이 생기고, 다른 차원에서 온 거대한 괴수가 지구를 파괴한다. 인간은 거대한 괴수에 대항하기 위해 '거대 로봇'을 만들어 지구를 지키려 하지만….' 최근 후속편 개봉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퍼시픽 림' 기본 줄거리다.
알고 보면 '로봇' 기원은 그리스신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신 헤라의 아들 헤파이토스는 허약하고 추한 외모로 말미암아 태어나자마자 바다에 버려진다. 헤파이토스를 바다의 정령 테티스가 거둬 각종 기술과 마법을 전수, 뛰어난 장인으로 기른다. 제우스의 방패, 아폴론의 태양마차,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등이 그의 작품이다. 헤파이토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선물로 거대 청동 로봇 '탈로스'를 만들어 줬고, 탈로스는 하루에 섬을 세 번씩 돌면서 외부 침략자의 배를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현대에 익숙한 '로봇'이라는 용어는 1920년 체코의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가 발표한 희곡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전에도 로봇을 추정할 수 있는 단어는 있었지만 외모, 말, 행동까지 인간과 유사한 유기체 묘사는 차페크가 처음이다.
이 작품은 로봇이 인간 노동을 대신하면서 인간은 점점 게을러져 퇴보하는 생물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느 날 로봇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공격한다는 충격 내용 때문인지 당시 체코어로 발표했음에도 세계 관심사가 됐다.
2016년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의 한판 대결 이후 세계 이목은 AI 기술에 집중됐다. AI 기술을 접목한 지능형 로봇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 로봇 개발사 핸슨로보틱스가 만든 AI 로봇 소피아는 한 인터뷰에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말해 충격과 함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피아 말이 단순한 농담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은 차페크 작품에 묘사된 미래 사회 단면이 현재에 보이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과 이를 이용한 첨단 로봇 개발에 앞서 어떤 기준과 목적으로, 어떻게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데 활용할지와 관련한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소재·부품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재료연구소는 로봇 산업과 직간접 연관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다. 그동안 국내 제조업 '구조물-가공·조립-시스템'이라는 외형 산업 구조를 '터빈·모터-핵심부품-핵심소재' 중심 고부가 가치 부품 산업 구조로 변모시키는 데 기여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선박 제조 부문에서 세계 최고를 달렸지만 이러한 완성품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동력장치(파워 유닛)에 대한 연구개발 성과는 미흡했다. 자동차, 선박, 항공기 등 현재 이동 수단에서 미래 사회 로봇에까지 생명을 부여할 파워 유닛은 최첨단 소재와 부품, SW 등 각종 기술을 집적해야 구현 가능한 장치다.
파워 유닛은 에너지 효율 향상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모터 효율 1% 향상이 발전소 1대 분과 맞먹는다. 미래 신시장 선도는 물론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도 파워 유닛 핵심 소재와 부품을 국산화하는 일은 중요한 국가 과제다.
재료연이 위치한 창원시를 비롯한 경남은 제조업 강세 전통 지역이었다.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한 신산업 창출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동참해 재료연은 파워 유닛을 비롯해 핵심 산업 구조로 변화를 위한 산·학·연 융합 연구와 스마트 인재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헤파이토스를 보듬어 안고 기술과 마법을 전수한 테티스의 손길이 없었다면 거대 청동로봇 '탈로스'도 나올 수 없다. 탈로스를 있게 한 테티스 손길처럼 미래를 위한 산·학·연 융합 연구와 인재 양성을 위한 협력은 조만간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정환 재료연구소장 ljh1239@kim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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