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미국과 중국 무역전쟁 후폭풍 영향권에 들어갔다. 세계 1, 2위 경제 대국이 '관세폭탄'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내년 말까지 미국 내 일자리 14만5000여개가 사라지고, 중국 경제성장률은 연간 0.2%P 떨어질 것으로 우려됐다. 아시아 국가 경제성장률이 평균 1.1%P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승자 없는 'G2' 패권 경쟁 현실화
미국은 6일(현지시간) 중국에서 수입하는 340억달러(약 38조원) 규모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즉각 동일한 규모 관세보복 방침을 밝혔다.
기업의 제조원가 상승, 수입 가격 인상 등으로 양국 주요 기업과 소비자에게 부담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의 주요 교역국가들에도 여파를 미치면서 세계 경제에 부담요인이 될 전망이다.
미국 현지 동부시간으로 이날 오전 0시 1분을 기해 지난달 미 무역대표부(USTR)가 확정한 중국산 산업부품·설비기계·차량·화학제품 등 818개 품목 관세가 자동 발효됐다. 관세부과 방침이 정해진 500억달러(약 56조원) 가운데 나머지 160억달러 규모 284개 품목은 2주 이내 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500억달러는 지난해 미국의 대중 상품수지 적자 3750억달러 가운데 15%에 육박하는 규모다. 미국이 예고한 중국산 관세부과 품목은 모두 1102개로 기계, 선박, 항공 등 산업 설비와 통신, 로봇 등 IT에 집중됐다. 항공우주, 정보통신 등 첨단기술 제품은 중국이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분야다.
미국의 1차 관세 부과 대상 품목은 광범위하다. 항공기 엔진·타이어, 일부 승용차·트럭·오토바이·헬기·항공기·우주선, 선박 모터, 원자로 등이 포함된다. 푸드프로세싱 설비, 착유기·부화기 등 축산설비, 프린터·복사기 부품, 볼 베어링, 범용 스냅 스위치, 변압기, 리튬배터리, 레이더·무선 설비, 엑스레이 등 의료 설비 등으로 적용 산업군도 다양하다.
중국도 즉각 같은 규모, 대등한 강도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국가·국민 핵심 이익 수호 위해 반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선 6일부터 농산품, 자동차, 수산물을 포함한 340억달러 규모, 545개 품목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다. 중국이 이번 조치에 이어 2단계 조치를 합해 전체 500억달러 규모 659개 품목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대상 품목은 대두, 옥수수, 밀, 쌀, 쇠고기, 돼지고기, 어류, 채소, 자동차, 화학제품, 의료 설비, 에너지 등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세력이 많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품과 자동차를 겨냥해 타격을 준다는 전략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미국의 경우 이번 조치로 내년 말까지 일자리 14만5000개가 사라지고, 국내총생산(GDP)은 내년 말까지 0.34%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중국도 2019년 성장률이 0.2%P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무역전쟁 장기화 우려…세계 경제도 먹구름
양국의 무역전쟁은 확전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미국처럼 나머지 화학 공업품, 의료 설비, 에너지 제품에 관세부과 여부를 추후 발표할 계획이다. 미국은 중국이 보복하면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중국이 미래 첨단기술 업종 선두주자가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차세대 기술 패권에서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부상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고 있다.
양국의 초강경 대응은 500억달러 규모 수입물품 관세 부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상황은 미중 무역전쟁의 전면, 장기화다.
서로가 제재 품목을 확대하고 기업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위원화 절상 압력이 이어지면 과거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를 가져왔던 '제2의 플라자' 합의 요구가 이뤄질 수도 있다. 중국 역시 미 국채 매각으로 반격을 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내 정치상황도 무역전쟁의 장기화를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등 악재를 딛고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자국 표심을 얻기 위해 무역제재를 활용할 수 있다.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고, 재선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최고위급 협상 타결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면서 중국 시장 개방과 진입장벽을 해소한다. 중국으로부터 지식재산권 보호 조치 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현재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정책에서 두 갈래로 쪼개진 것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보호 무역주의자에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엇갈린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는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중국이 아니라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글로벌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중국 경제가 최근 내수 비중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해진 글로벌 밸류체인 때문에 다른 중국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재중 미국 기업에 타격이 돌아갈 수 있다.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이 비중은 40%에 이른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중국이 무역흑자를 줄이라는 미국 압박에 따라 총수출을 10% 줄이면 아시아 국가의 GDP 성장률이 평균 1.1%P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은 대중국 중간재 및 부품 수출이 둔화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 수출 금액에서 약 2억달러 내외가 감소될 것으로 추정된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