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은 혁신 기술 개발 부재와 시장진입을 가로막는 각종 장애물로 성장에 어려움을 겪었다. 기술역량 부족, 시장진입 제한이라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싸울 '스타기업' 육성에도 실패했다. 의료기기 기술 발전에 따른 혜택이 환자에게 돌아가지 못하면서 국민건강을 증진하는 국가적 책임도 멀어졌다.
19일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HIP)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의료기기 규제 필요성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는 업계, 환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산업육성과 환자 안전을 모두 실현하도록 돕겠다고 답했다.
백승욱 루닛 대표는 “현재 의료기기가 시장에 출시될 때까지 세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다른 방식 절차를 건의하며, 환자 편익을 증진하는 첨단의료기기 개발 기업 가치가 제도권에서 인정받게 해주길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루닛과 같은 인공지능(AI) 기업은 의료영상정보를 분석해 진단을 보조하는 의료기기를 개발한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세계 최초로 'AI·빅데이터 기반 의료기기 인허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식약처 인허가를 획득해도 실제 진료환경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사 진단을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해 기존 수가에서 추가적으로 반영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신의료기술로 판정되더라도 10개월가량 걸리는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본지 7월 11일자 2면 참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체외진단기기도 우리나라에서는 규제에 갇혀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체내에 삽입하는 의료기기와 달리 상대적으로 위해성은 적은 체외진단기기 규제 개선 목소리가 지속됐지만 이제야 개선방안을 내놨다. 국내기업이 규제에 묶인 사이 글로벌 기업은 막대한 재원을 투자해 세계시장 선점을 시도했다.
조상래 젠큐릭스 대표는 “체외진단기기는 다른 기기와 동일한 인허가,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한다”면서 “정식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를 받았는데, 또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해 이중규제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규제에 막힌 의료기기 산업은 환자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환자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료기기가 적절한 시점에 보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아당뇨 환자인 자녀를 위해 해외에서 판매하는 의료기기를 구입했다가 고발당한 어머니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국은 '무허가 의료기기 수입·제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본지 7월 5일자 10면 참고>
정소명군 어머니는 “식사 전후 일상에서 바늘로 손을 찔러 혈당검사를 해야 하고 인슐린을 넣어야 하는데, 변수가 너무 많다보니 저혈당으로 위중한 상황이 생겼다”면서 “해외 사이트를 보다가 필요한 제품을 찾았고 필사적으로 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행위가 법을 위반했다고 일곱 차례 조사를 받아야 했다”면서 “최근 여러 기기가 개발되면서 당뇨인 삶이 개선됐는데, 혈당기기를 잘 활용하도록 교육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