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매일 접하는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심지어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나누는 일상 대화에서든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4차 산업혁명'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미래학자 존 클리핑거 교수는 “'인더스터리 4.0'을 유독 한국에서만 '4차 산업혁명'이라고 번역해서 혁명이라는 단어로 일컫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4차 산업혁명'으로 굳어져 있어 달리 부르는 것도 이상하다. 어떻게 정의하든 우리는 과연 4차 산업혁명 시대 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많은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아직 멀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학 입시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쳐 봐야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한마디 해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 이외의 다른 분야는 많이 변한 것을 체감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특히 수학과 과학 교육은 아직도 교사는 칠판에다 설명을 풀고 학생은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한 것을 베끼기만 하는 식의 일제강점기 때부터 내려온 교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이틀 동안 열린 수학 체험전에 간 적이 있다. 체험전의 많은 부스에도 놀랐지만 몇 개를 제외하고 대부분 교사의 지도 아래 중·고교생들이 운영하고 있어서 놀랐다. 부스를 찾아온 초등생부터 또래 중·고교생, 일반인에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들의 콘텐츠에 담긴 수학 원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진지한 표정에서 수학 수업 시간 때면 대부분 엎드려서 잠을 자는 교실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번 수학 체험전을 보면서 학생들이 오랫동안 준비한 내용이 단 이틀 동안만 운영되고 모두 철수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렇게 애써서 준비한, 정말 좋은 콘텐츠를 왜 학교 교실로 옮겨서 할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교실 수학 수업에서 교사 대신 수업을 준비한 학생들이 친구에게 설명하고 교사는 부족한 부분만 보충해 주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진다면 교사 일방으로 끌고 가는 수업보다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도를 높이고 학습 효과가 더 나을 수 있다. 부스 운영에 참여한 학생들이 실제로 수학 시험 성적이 우수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 학생은 최소한 자신이 운영한 부스의 수학 내용만은 다른 학생에게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들은 교실 수학 수업을 체험전처럼 만들기 방식으로 진행하면 학생들은 좋아하지만 학부모들은 수업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며 항의하는 그런 세태에서 수업 형태를 바꾸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수학이라면 머리를 가로젓고 초등학생 때부터 수학을 포기할 정도로 싫어하는 데는 분명 우리의 교실 수업 방식에 문제가 있다.
학생들의 수학 부담감을 줄이고 흥미와 이해를 돕기 위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수학 교과서를 바꿨다. 그렇다면 과연 수포자(수학포기자)는 줄었을까. 현재 수포자는 더 늘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는 수학 과목이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이라고 판단해 학생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하나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기하를 제외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모든 학생이 다 수학을 잘할 필요도 없고 수학을 전공과목으로 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수학 이외 학문 분야, 특히 자연과학·공학 분야에서 필요한 위치 정보 분석이나 공간 지각력을 향상시키는데 절대 필요한 기하를 빼는 것은 교각살우 전형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인 인공지능(AI), 로봇, 3D 프린팅,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자율주행차 등 어느 곳에서도 기하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얼마 전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박사는 우리 교육 제도를 풍자한 만평 하나를 소개했다. 우람한 나무 앞에 원숭이, 펭귄, 코끼리, 물고기, 개 다섯 마리가 나란히 서 있었고 시험관이 “공정한 선발을 위해 여러분은 이 나무에 올라가는 시험을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원숭이에게 가장 유리한 나무타기를 펭귄, 코끼리, 물고기, 개에게 똑같이 가르치고 똑같이 시험도 보게 하는 교육 제도를 비판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지진해일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 특히 수학 교육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김선아 국립광주과학관장(조선대 수학과 명예교수) sakim@sciencecent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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