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블록체인 현장을 가다]<5>日 블록체인, 6차 산업 '농업'과 조우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도쿄 미나토구 코우난. 이곳에서 농업과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농산물 생산부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블록체인으로 연결한다. 소비자에게 신뢰성 있는 인증체계를 적용하는 혁신 사업이다.

1차 산업으로 불리는 농업에 블록체인이라는 미래 정보기술(IT)을 융합해 생산(1차 산업), 제조(2차 산업), 유통·판매(3차 산업)를 하나로 묶는다. 이른바 '6차 산업' 시작이다.

6차 산업이란 농촌 주민이 중심이 돼 모든 유·무형 자원을 연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농촌 현대화를 블록체인에 접목,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일본 미야자키현 아야마을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 농작물.
일본 미야자키현 아야마을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 농작물.

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ISID 이노랩을 찾았다. 일본 제1의 홍보기획사 덴츠와 미국 GE가 합작해 만든 기업이다. 핀테크, 암호화폐, 블록체인 등 회사는 거대 기업이 공격적으로 매진하기 버거운 사업에 실험정신을 가지고 뛰어든다.

암호화폐 거래소 천국으로 알려진 일본은 지난 연말을 지나면서 시들해졌다. 상한과 하한을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가격에 대형 해킹 사태가 터지면서 소비자 관심이 멀어졌다.

이노랩은 암호화폐보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블록체인이 가진 안전성과 신뢰성을 농업 분야에 접목했다. 농업 현장에서 기른 채소가 어떤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랐는지 신뢰성을 보증한다. 이어 도소매 유통과정까지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해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전 과정을 알려준다.

아야마을 보장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친환경 농산물 이력. QR코드로 농산물을 확인하고 있다.(왼쪽부터 시계방향)
아야마을 보장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친환경 농산물 이력. QR코드로 농산물을 확인하고 있다.(왼쪽부터 시계방향)

스즈키 주니치 ISID 이노랩 본부장은 “IBM은 푸드테크로 중국에서 수입하는 농산물을 미국에 들여올 때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며 “일본도 일정 단계까지 기준점은 있지만 더 높은 레벨을 구분하는 인증 체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블록체인을 이용해 농산물 진위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생산물을 연결해 지방 마을을 발전시키고 기준 세분화로 판매처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노랩은 블록체인으로 품질 좋은 농산물과 사고 싶은 사람을 이어준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웰빙 라이프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일본도 세대마다 음식 리뷰를 선호하는 방법이 다르다. 20대 이하는 아마존 리뷰나 애플리케이션(앱) 등 모바일을 주로 본다. 30대 이상은 신문 서평, 미슐랭 맛집 가이드 등 오프라인을 더 찾는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뜬 거짓 정보가 사회문제로 불거진 일이 있었다. 일본농협(JA)에서 자국산이라고 판매하던 쌀이 중국산으로 드러났다. 또, 재료로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향만 내면서 판 사례도 나왔다.

스즈키 주니치 덴츠 이노랩 본부장
스즈키 주니치 덴츠 이노랩 본부장

스즈키 본부장은 “달걀을 흰자 노른자 따로 만들어 계란 슬라이스처럼 파는 것을 계란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가짜 달걀, 연어알 등 먹어도 상관없다는 표기만 돼 있는 것을 식품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고 실제로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이노랩은 2016년 10월부터 미야자키현 아야마을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농산물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좋은 땅에서 만들어진 고품질 농산물과 소비자를 연결해 준다.

아야마을은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방울토마토, 채소 등 작물을 재배했다. 하지만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닐하우스에서 만들어 파는 방울토마토보다 대량생산 및 인건비 등에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몸에 좋은 친환경 농산물이었지만 매출은 연 250만엔(약 2500만원)에 불과했다. 하우스 농산물보다 세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교육비 등을 충당 못해 유기농을 포기하고 일반 농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노랩은 에스토니아 가드타임과 제휴를 맺었다. 가드타임은 인구 130만명 에스토니아에서 투표, 세금 등 2000여 가지 공공서비스를 맡아 진행한다.

레스토랑 밖 안내판에 친환경지표를 다이어그램으로 알려주고 있다.
레스토랑 밖 안내판에 친환경지표를 다이어그램으로 알려주고 있다.

슈퍼마켓, 레스토랑 등 소비자가 물건을 고르는 잣대인 가격을 환경영향지표라는 것으로 대체했다. 맛보다 토지에 중점을 두고 농사를 지은 마을, 농약을 몇 년간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구매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기준을 도입했다.

이노랩은 생산이력, 토지이력, 생산장비, 비료, 포장지 등에 QR코드, 근거리무선통신(NFC)를 이용해 제품 검증 이력을 블록체인으로 저장한다. 유통에서 IoT를 이용해 운송차량 속도나 저장창고 압력, 문이 몇 번 열렸는지 등을 측정한다. 포장지에 적힌 QR코드로 바꿔치기 같은 인위적 변경을 애초부터 차단한다. 생산부터 유통 전 과정을 원산지 증명이 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이노랩은 빌리지인재팬, 시비라, 가드타임, 스미토모, 모리 등 8개 업체와 운송, 포장, 서비스 등을 협력한다. 아야마을 농산품만을 쓰는 레스토랑 가맹점도 점차 늘려나간다는 목표다.

아야마을 친환경 농산물로 조리된 음식.
아야마을 친환경 농산물로 조리된 음식.

스즈키 본부장은 “레스토랑에서 고객이 원하는 음식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경로를 거쳐 이곳까지 왔는지를 다이아그램으로 알려준다”며 “메뉴판에는 가격을 빼고 이런 친환경 정보로만 손님이 주문하도록 하고 보상으로 토큰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지갑 두께로 손님을 판단하기보다 친환경 등을 얼마나 중요시하는 지를 손님 지표로 삼겠다는 계산이다.

그는 “플래티넘 카드도 돈이 아무리 많다고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 사람의 사회적 인지도나 지명도가 기준 이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돈 이상으로 생활 패턴을 나타내는 것이 토큰 보유량이 될 것”이라며 “다양한 토큰을 얼마나 보유하는 지가 신용 척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노랩은 아야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 과정에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유통과정에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적용했다.

빠른 단계에서는 프라이빗으로 증명하고 퍼블릭과 연계해 다시한번 증명한다는 'proof of proof' 방식이다. 지난해 3월 비트코인보다 2000배 빠른 4000tps 처리속도를 구현했다. 지금은 4000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이노랩 측은 밝혔다.

상품 택배상자에도 인증 스티커가 붙어있다.
상품 택배상자에도 인증 스티커가 붙어있다.

일본 블록체인추진협회(BCCC)에 호텔, 운송, 여행, 농업 등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려는 220개 사업자들이 모였다. 스즈키 주니치 본부장은 BCCC에서 생산이력부 회장을 맡았다. 유럽입자연구소(세른)와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블록체인을 융합하는 '퀀텀+블록체인' 차세대 인프라 연구를 시작했다. 주로 비즈니스와 인프라를 융합하는 방법론을 연구한다.

이노랩은 첨단 테크놀로지를 일본에서 어떻게 접목할지를 고민한다. 농업 등 생활에 밀접한 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스즈키 본부장은 “궁극적으로 블록체인을 비금융 분야에서 발전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해외 블록체인 현장을 가다]<5>日 블록체인, 6차 산업 '농업'과 조우

도쿄(일본)=

김정희기자 jha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