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WSJ "암호화폐 시세조작단 수십 개 활동중…투자자 피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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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시세를 조작하는 수십 개 그룹이 지난 6개월간 8억2500만 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거래를 유도해 다른 투자자들에게 수억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끼쳤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올해 1∼6월의 거래 자료와 트레이더들 간 온라인 대화 내용을 분석해 121종의 암호화폐와 관련 175차례의 '가격 띄우고 팔아치우기(pump and dump)'가 있었다고 전했다. 가격이 갑자기 치솟았다가 몇 분 만에 급작스럽게 추락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가격이 오르게 한 다음 팔아치우는 계략은 금융시장의 오래된 사기 형태 가운데 하나다. 트레이더들은 어떤 자산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다른 투자자들을 속여 수익을 챙기고 빠진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상장주식을 이용한 이런 행위를 자주 적발해 민사소송으로 대응한다. 암호화폐 조작도 이와 다를 바 없지만, 규제 당국은 아직은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온라인에는 암호화폐 트레이더들이 모이는 채팅방이 성행한다. 가장 큰 그룹인 '빅펌프 시그널'은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앱)인 텔레그램에 모인 팔로워가 7만4000명이다. 다른 메시지 앱 디스코드에 있다가 인원 한도 초과로 지난해 12월 텔레그램에 채팅방을 개설한 후 26차례의 시세 조작 활동으로 2억2200만달러의 거래를 끌어냈다.

암호화폐 스타트업들의 신규 암호화폐공개(ICO)가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후 시세 조작도 더욱 만연해졌다.

조작 그룹 전략은 단순하다. 먼저 날짜와 시간, 거래소를 알린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가격을 띄울 암호화폐를 공개하는데 이를 '신호를 보낸다(signal)'고 일컫는다. 트레이더들은 앞다퉈 암호화폐를 사들였다가 순식간에 팔아치우는데 이 모든 과정은 몇 분 만에 일어난다.

예를 들어 빅펌프 시그널은 지난 7월 1일 미국 동부시각 3시 정각 팔로워들에게 바이낸스라는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클록코인을 사라고 지시했다. 즉각적 매수로 클록코인 가격은 50% 뛴 5.77달러까지 찍었다가 2분 만에 1달러 가까이 떨어졌다. 6700차례 170만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는데 1시간 전에 거래가 거의 없었던 것과 비교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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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법은 1930년대에 금지됐다. 당시 트레이더들이 자신들끼리 주식을 사고팔아 가격을 부풀린 다음 일반 투자자들에게 떠넘기고 수익을 챙겼다.

암호화폐 조작단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63개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그룹 대부분 텔레그램과 디스코드에서 활동하며 6월 말 기준 총 23만6000명의 팔로워가 있다. 이들 그룹은 초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비공개 대화방에서 활동하며 운영자는 익명이다. 많은 그룹은 회원들에게 매월 50∼250달러의 회비를 받는다.

시세 조작 주체가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들은 대상 암호화폐를 선정하는 유리한 점이 있어 바닥에서 사서 자신들이 계획한 고점에 팔 수 있다.

암호화폐 분석기업인 사이퍼트레이스 데이브 제번스 최고경영자는 트레이더들에게 시세 조작 활동이 도박 같다고 설명했다. '치킨 게임'과 비슷한데 가격이 고점에 오르기를 더 오래 기다릴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가격이 추락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위험도 동시에 커진다.

조작 활동이 자주 이뤄지는 곳은 최대 거래량이 발생하는 거래소 바이낸스다. 바이낸스에서는 ICO가 자주 있는데 많은 경우 조작단이 효과적으로 암호화폐를 사고 가격을 통제하기에 충분할 만큼 규모가 작다. 또 조작 대상이 되는 암호화폐는 새로운 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을 정도로만 거래가 이뤄지고, 의미 있는 양을 살 수 있을 만큼 비싸지 않다.

빅펌프 시그널의 가격 띄우기로 가장 성공적이었던 페세타코인, 스텔스, 아그렐로 등 3개는 조작 전 가격이 6∼31센트에 불과했다. 이들 암호화폐는 시세 조작으로 가격이 70%나 뛰었다.

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