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의 검은 유혹'...무법천지 암호화폐거래소

중간 브로커가 상장비용 수십억 요구...인지도 낮은 기업엔 가치평가 조작

#국내 블록체인 업체 대표 A씨는 최근 중국 대형 암호화폐거래소 상장을 추진하다 포기했다. 중간 브로커가 상장 비용으로 약 20억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거래소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 B씨는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 소정 비용만 내면 심사 과정 없이 곧바로 국내 중소 거래소에 상장이 가능하단 것이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다른 거래소를 찾기로 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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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거래소 상장을 빌미로 많게는 수십억원을 수수료로 요구하는 불법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다. 특히 중국 대형 암호화폐거래소 상장 기준 최대 50억원을 성공 수수료로 제시하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거래소 상장 수수료가 있는 것처럼 업체를 속이거나 인지도가 낮은 기업 상장을 별도 심사 과정 없이 통과시켜 주겠다는 과장 홍보를 일삼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암호화폐거래소 상장을 대가로 불법 브로커가 은밀한 유혹을 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중소형 블록체인 기업은 거래소에 상장되기만 하면 상당한 자금 조달을 받을 수 있어 브로커 유혹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 상장을 포기한 블록체인 기업 대표는 “거래소 본사 임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로비 비용을 주면 대형 거래소에 빠르게 상장시켜 주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코인 상장 랭킹도 돈만 있으면 조작해 주겠다는 브로커도 있다. 이른바 브랜드력이 약해서 코인 랭킹에 들지 못하는 기업 대상으로 가치 평가 등을 올려주겠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 거래소 기준 상장에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하면 약 100억원이다. 고객 대상의 에어드롭 마케팅 비용까지 감안하면 자금으로 120억원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상당한 비용을 브로커가 중간에서 마케팅 비용 명목으로 챙겨 간다.

국내 거래소의 경우 상장 수수료를 없앴지만 해외 거래소는 여전히 브로커들이 암약하고 있다.

코인 상장 수요가 많은 대형 거래소는 연락이 어렵고 심사 체계가 까다롭기 때문에 기업이 전문 브로커를 쓰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한 국내 블록체인 업체 대표는 “대형 거래소에 상장하려면 최소 자금으로 50억원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이는 사실 중간 브로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었다”면서 “글로벌 톱3 거래소 관계자를 직접 만난 결과 상장 수수료는 없다고 확인해 줬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잠재성이 낮은 클라이언트가 청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심사 과정에서 걸러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돈만 내면 무조건 상장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호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돈만 받고 잠적하는 '먹튀' 사례도 최근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후오비·하닥스, 오케이이엑스 등은 거래소 계정이 있는 고객 대상으로 상장 투표를 진행한다. 매회 후보군 가운데 득표율로 몇 순위 안에 든 업체만을 상장시키는 방식이다.

다만 일부 중소형 거래소에서 마케팅 비용으로 소정의 암호화폐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블록체인 업체 대표는 “중소형 거래소에서 에어드롭(무상 제공)에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토큰을 요구했다”면서 “그 비용도 억 단위이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라고 말했다.

비용 부담에도 상장을 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형 거래소에 상장될 경우 상장 가치가 몇 배로 뛰기 때문이다.

브로커 행위와 사기가 발생하자 국내외 대형 암호화폐거래소는 상장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는 등 자정 노력에 들어갔다. 코인원 등 국내 거래소는 “상장 초기 에어드롭에 필요한 마케팅 비용도 일절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