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혁신성장에 재정을 대거 투입한다. “경쟁국은 뛰는데 우리는 걷는다”는 문재인 대통령 질책이 나온 후 3개월 만에 내린 결단이다. 정부는 작년 선정한 '8대 선도사업'과 이번 새로 지정한 '3대 전략투자 분야'에 내년 총 5조원을 투입한다. 올해보다 65% 늘었다.
소득주도 성장에 밀려있던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예산을 대거 투입하기로 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기존 발표한 정책을 불과 9개월만에 수정해 청사진이 부실했고, 기업 혼란을 야기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혁신성장 지원이 대기업에 편중돼 중소·벤처기업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대 전략투자 분야 지정…'플랫폼 경제' 구현할 것
정부는 우리 경제 성장잠재력 강화를 위해 '플랫폼 경제' 구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플랫폼 경제는 빅데이터·인공지능(AI)처럼 여러 산업에 걸쳐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기술·생태계를 의미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요성이 커진 플랫폼 경제를 구현해 혁신성장을 가속화하고, 경제체질·생태계 혁신을 촉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한 3대 전략투자 분야로 △데이터경제 △AI △수소경제를 선정했다. 여기에 모든 분야에 걸쳐 중요한 '혁신인재 양성'을 추가했다. '3대 전략투자+혁신인재'에 내년 1조4900억원을 투입한다. 올해(8700억원)보다 6200억원(71%) 늘어난 수준이다.
데이터경제(블록체인 포함)와 AI에 내년 1900억원을 투입한다.
그동안 철강이 '산업화 쌀' 역할을 했듯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 역할이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 분야별 데이터를 축적·가공(표준화)해 시장 수요에 맞게 공급하는 빅데이터 플랫폼을 총 10개 만든다. 이후 데이터 거래 지원제도를 마련, 분야별 플랫폼을 연계한 빅데이터 네트워크를 구축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빅데이터 네트워크의 원활한 구축을 위해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 개정을 연내 조속히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용량·고성능 컴퓨팅, 알고리즘 등 범용 AI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빅데이터 활용을 최적화한다. 빅데이터 플랫폼·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 데이터 저장·보안성과 거래 신뢰성을 높인다.
데이터 디바이드(격차) 해소, 공유경제 기반 구축에 내년 1300억원을 투입한다. 데이터 바우처를 중소·벤처기업에 제공, 데이터 구매·가공을 지원한다. 중소기업의 온라인 수출 지원을 위해 공유 물류시스템도 구축한다.
수소경제에는 내년에만 1100억원 투입한다. 생산부터 저장·운송, 이용까지 단계별 R&D를 추진해 수소생태계를 조성한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수소를 반영하고, 별도 수소경제법을 제정할 방침이다. 2023년까지 수소 양산기술·설비를 확보한다.
혁신인재 양성에는 내년 3400억원을 투자한다. AI·빅데이터·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에서 핵심인재 1만명을 신규 양성(연간 2000명, 5년간 1만명)한다. 프랑스의 '에꼴42'를 벤치마크 해 학교·전공·국가 경계를 뛰어넘는 혁신적 교육모델도 마련할 방침이다.
◇9개월만에 전략 수정…중소·벤처기업 소외 우려도
정부는 '3대 전략투자+혁신인재'(내년 1조4900억원 투입)와 별개로 작년 말 선정한 8대 선도사업에 내년 3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이로써 내년 혁신성장 예산은 총 5조원에 달한다. 이는 올해(3조386억원)보다 65% 늘어난 수치다.
정부가 혁신성장에 재정을 대거 투입하기로 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최근 우리 경제 회복세가 미약하고, 일자리 문제도 지속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책이 불과 9개월 만에 수정된 것이라 기업 혼란이 우려된다.
정부는 작년 11월 8대 선도분야 발표 후 9개월이 지나 이보다 상위개념인 3대 전략투자 분야를 제시했다. 결국 작년에는 '제대로 된 밑그림' 없이 8대 선도분야를 선정한 것을 인정한 셈이다. 8대 선도사업에는 올해부터 예산이 투입됐지만, 이를 포괄하는 3대 전략투자 분야에는 내년부터 재정을 본격 투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임기근 기재부 재정기획심의관(혁신성장본부 선도사업2팀장)은 “8대 선도사업이 개별 사업단위 위주로 돼 있어 총체적으로 끌어갈 개념이 필요해 3대 전략투자 분야를 정했다”며 “여건이 바뀌면 추진체계도 일부 보완이 필요하다. 여건이 바뀌었는데도 기존 틀을 고집스럽게 밀고나가는 것은 혁신성장의 참모습이 아니다”고 말했다.
8대 선도분야도 9개월 만에 수정했다.
정부는 작년 8대 선도분야로 △미래자동차 △드론 △에너지신산업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핀테크 △초연결지능화를 제시했다. 이번에 초연결지능화를 빼고 바이오헬스를 추가했다.
정부는 “초연결지능화를 3대 전략투자 분야의 데이터·AI경제로 확대·승격해 포함했다”며 “고용·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큰 바이오헬스를 8대 선도사업에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3대 전략투자와 8대 선도사업이 모두 대기업이 이끌고 있는 분야라 수혜 대상 중소·벤처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우려다. 일례로 바이오헬스는 삼성, 수소경제는 현대자동차 등이 가장 큰 혜택을 볼 수 있는 분야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이런 지적에 “협소한 이해”라고 반박했다.
임 팀장은 “8대 선도사업과 3대 전략투자 분야는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이 모두 총력을 기울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예컨대 수소경제 지원을 현대차 지원으로 보는 것은 너무 협소하게 이해하거나 오해 소지가 많은 해석”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