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거래소 벤처 제외 '주홍글씨', 협회·단체-기업 공동대응 '후폭풍'

암호화폐 거래소를 벤처 기업 업종에서 제외한다는 정부 방침에 후폭풍이 거세다.

벤처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에 따른 벤처기업 제한 업종 목록(자료:중기부)
벤처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에 따른 벤처기업 제한 업종 목록(자료:중기부)

블록체인 산업을 유흥·사행성 업종과 묶어 '주홍글씨' 낙인을 찍는 것과 다름없다며 유관 협회·단체, 기업, 거래소까지 공동 대응에 나섰다. 개정안 입법 저지까지 도모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블록체인 관련 협회·단체와 기업·학회 등이 공동 대응에 나섰다. 법제화 저지는 물론 중기부 대상 공동성명서, 항의 방문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등은 벤처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에 대한 공동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 협회·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이번 개정안이 19세기 말 영국 자동차 산업 성장을 막은 적기조례와 유사한 새 적기조례로 규정하고 중기부 정책 방향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발바닥에 종기가 났다고 해서 다리를 자르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입법안이 실행되면 IBM에 이어 블록체인 기술 특허 수가 두 번째로 많은 국내 기업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 벤처 기업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미용실, 노래연습장, 골프장까지 벤처업체로 지정되는 마당에 특허 보유 기술 기업이 벤처 지정에서 제외된다면 대한민국에서 블록체인 기반 벤처 기업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는 대통령 규제 혁신 기조에 역행하는 것이고 정부가 발표한 플랫폼 경제 육성 계획에도 반하는 것으로, 신중한 재검토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블록체인 관련 기업과 암호화폐공개(ICO)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 등도 격한 반응을 보였다.

ICO 기업 관계자는 “새로운 산업과 기술에 도전하면 일단 정부가 두 팔 걷어붙이고 막아서는 모습”이라면서 “암호화폐 거래소만을 제외 업종으로 지정한다지만 결국 ICO로 발행한 코인이나 토큰이 유통되는 시장 자체를 옥죄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근영 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장도 “스타트업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주홍글씨로 낙인찍어서 블록체인 산업을 고사시키려는 행위”라면서 “각 협회와 단체 공동 대응과 함께 회원사 모두 중기부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입법 반대 행동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요 투자자가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단체 집회까지 거론되고 있다. 또 이번 기회에 가상계좌 발급 중단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달 안으로 대형 기업이 모여 공동 대책회의도 개최할 예정이다.

법조계와 학계, 주요 기업 역시 공동 대응에 동참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4차 산업혁명 주요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당연히 정부 벤처 산업 육성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면서 “블록체인은 인정하면서 유관 산업 육성에 필수인 암호화폐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4차 산업혁명에서 낙오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 변호사도 “이번 규제는 주식 투기가 과열되면 한국거래소 잘못이라는 식의 발상”이라면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를 육성하지 않으면 해외 거래소에 의해 CPM(콘텐츠, 개인정보,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고 유출 상황까지 발생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폭풍이 거세지자 중기부도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벤처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관련 이해 관계자들 의견을 수렴하고 업계와 소통하기 위해 간담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를 비롯해 한국블록체인협회,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한국금융ICT융합학회 등 협회·단체와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치 못한 민감한 업계 반응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음 주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기부 관계자는 “벤처특별법 개정안에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직접 규제한다거나 낙인을 찍겠다는 의도가 전혀 담기지 않았다”면서 “업계와 소통을 통해 오해를 풀고 건강한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