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뜬금없다. 방송통신 정부 조직개편 이야기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발원지는 방송통신위원회다. 배경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통위 중복 업무를 개선하고 뉴미디어 시대를 대비하자는 주장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와 진흥 이원화 구조를 방송 융합이라는 큰 틀에서 보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리타분한 논리다. 이상일 뿐이다. 현실은 다르다. 역대 정권에 비춰 봤을 때 부처를 쪼개고 합치는 건 정치적 입김이었다. 조직 논리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짙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정부 시절 '어게인 방통위'를 그린다는 소문이 들린다.
조직개편 논란은 해프닝으로 그칠 가능성이 짙다. 시기도 시기지만 특정 부처만 개편할 리 만무하다. 다른 부처 요구는 크지 않다. 이상한 건 당사자인 과기정통부다. 입장이 없다. 부처 갈등을 우려한다지만 지나치게 조용하다. 과민 반응도 문제지만 무반응도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실종된' 과기정통부. 정말 그럴까. 출범 1년을 뒤돌아보자.
역점 통신정책은 요금 인하였다. 대통령 공약 사항이다. 보편요금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1년을 공들였다. 결국 국회에까지 법안이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무도 박수치지 않는다. 국회를 통과할 지도 미지수다. 오히려 시장에 맡겨야 할 가격을 정부가 통제한다며 강한 역풍을 맞았다. 최근 바른미래당에 제출한 내부 보고서가 공개됐다.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알뜰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다. 알뜰폰은 통신요금을 낮추기 위한 핵심 정책이었다. 결국 두 정책이 상충되는 우스운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한 발 더 나갔다. 5세대(5G)통신을 위한 요금체계 연구반을 꾸렸다. 5G 세계 첫 상용화도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 요금부터 만지작거린다. 앞뒤가 바뀌었다. 이게 통신정책의 현주소다.
방송정책에서는 CCS충북방송 재허가를 놓고 뒷말이 많다. 과기정통부 심사에서 기준점을 넘겼지만 방통위가 경영 투명성 등을 이유로 사전 동의를 거부했다. 방통위가 과기정통부 결정에 처음으로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부처 엇박자'가 문제지만 당사자는 체면을 구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넷플릭스 시장 교란, 페이스북 망 이용 대가, 망 중립성 모두 과기정통부로 가면 '블랙홀'이 된다. 너무 지엽적인 지적일까.
혁신성장으로 넘어가 보자. 핵심은 과학기술과 ICT다. 전담 부처는 과기정통부지만 이미 실토했다. 유영민 장관 스스로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실행력 있게 주도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토로했다. 규제 개혁도 대략 난감하다. 새로운 기술과 사업 모델이 많아 규제로 늘 발목이 잡히는 분야가 ICT다. 산업계는 부글부글 끓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 속 시원하게 해결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기획재정부가 주도권을 틀어쥐었다. 데이터, AI, 블록체인과 같은 플랫폼은 ICT 고유 영역이었다. 지금은 기재부 공무원이 '플랫폼 경제'를 외치는 세상이다. 들러리가 따로 없다.
과학기술 정책도 오십보백보다. 혁신본부까지 만들었지만 현장에는 “성과가 없다”라는 공공연한 목소리만 있다. 당장 사상 최대로 편성되는 내년도 예산에서 연구개발(R&D) 분야는 제자리걸음이다. 국가 어젠더인 4차 산업혁명 어디에도 과기정통부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정책이 청와대 중심으로 쏠리면서 부처 역할이 축소됐다고 하소연할 수 있다. 그래도 과기정통부는 달라야한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신성장 동력 부처이기 때문이다. 존재감이 없어지면 산업도 실종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ICT는 화려하던 추억만 뒤척이는 상황이다. 집 나간 과기정통부를 찾기 위해 플래카드라도 내걸자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과학기술과 ICT를 팽개치고 집을 나가면 개고생만 할 뿐이다.
전자/산업 정책 총괄 부국장 bjkna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