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6일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 나섰지만 대기업을 향한 불신 등을 드러내면서 또 다른 논란에 직면했다. 장 실장은 이날 우리나라 경제성장 과실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는 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과 가계에 '정당한 몫' 만큼 돌아가도록 경제구조를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에 대한 불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이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와 정부 인사에게 기업현장 방문 확대를 지시하는 등 기업과의 소통을 강화하라고 한 것과는 반대 기류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후 비정규직 정규직화, 주 52시간 근무,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하면서 높아진 기업 불만을 달래기 위한 차원에서 소통 강화를 주문했다. 멀어져만 가는 정권과 대기업 간 심리적 거리를 좁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토록 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장 실장은 대기업을 향해 불편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기업 투자 비효율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소득불평등이 심해진 배경으로 기업 소득 불평등을 꼬집었다.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67.9%에서 61.3%로 줄어든 반면, 기업소득 비중은 2000년 17.6%에서 작년 24.5%로 늘어났다. 기업이 IMF 이후 '버는 돈' 즉, 기업소득에 비해 투자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투자 가능한 내부자금인 '기업저축'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실장은 “기업소득 비중과 기업저축은 증가했지만 기업투자는 크게 늘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현재 구조”라며 “경제성장 성과가 가계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국내 수요가 정체되고 기업투자가 기업저축보다 작아지면서 성장잠재력이 낮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하나의 패키지로 둔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책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내는데 있어 대기업 역할을 축소평가는 것은 불균형한 시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장 실장은 혁신성장이 신산업 분야 기업 투자를 촉진할 것이라며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을 '패키지 정책'으로 표현했다.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정·변경할 뜻이 없다며 '고용 쇼크'와 소득양극화 심화 책임 논란에 정면돌파를 택했다. 장 실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경제정책 간담회를 가진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1년 여만이다. 담당 수석이 브리핑한 경우는 있었지만 장 실장이 직접 기자실을 찾아 경제정책을 상세히 설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전날 문 대통령 행보와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전당대회 영상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 문제에 대한 걱정의 소리가 많지만, 상용근로자 증가 등 고용의 양과 질은 좋아졌다”며 “전반적인 가계소득과 수출도 호조”라 평가하며 여론 진화에 나섰다.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는 만큼, 경제사령탑으로서 장 실장도 같은 메시지를 보내며 '정책 지키기'에 나선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고용상황이 악화되자 청와대·정부 경제팀에 완벽한 팀워크를 주문하면서 “결과에 직을 건다는 각오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장 실장은 고용지표와 소득분배지표가 급격히 악화된 데 대한 청와대의 자체 분석 결과를 설명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양극화가 강화됐다는 주장에 “문재인 정부 예산과 정책이 실행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고,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도 이제 반년을 지났다. 민생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혁신성장을 가속화시킬 규제혁신 법안도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며 정책 성과를 평가하기엔 이르다고 반박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과거 패러다임을 바꿔야하는 것이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장 실장은 “희망의 싹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며 “올해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인 2.9%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근거로 수출 5개월 연속 500억 달러 상회, 상반기 수출 역대 최대 실적, 올해 신설법인 사상 최대, 신규벤처투자 최대 실적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출 실적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비롯된 성과라는 점에서 장 실장의 대기업 투자성장 무용론과 엇박자를 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한 부작용을 의식한 듯 “정책은 늘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분들이 더 고통받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며 “그 분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정부가 나누어 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의 갈등설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경제부총리 말씀이 정확하다”며 “저는 스탭이고 비서실에서 정책을 맡고 있고, 부총리는 정책 집행 수장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를 땐 분명히 밝히고 토론하면서 정책 선택을 이어가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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