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익IPS가 2년 만에 원익테라세미콘 합병을 다시 추진한다. 2016년 양사 합병을 시도했다가 주주 반대로 무산됐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디스플레이 투자 시장이 경색되면서 원익테라세미콘 실적과 주가가 급락한 영향이 크다. 원익IPS가 매출 1조원 규모를 실현해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절실함도 작용했다.
28일 증권가와 업계에 따르면 최근 원익IPS는 원익테라세미콘 합병을 다시 검토하키로 방침을 정했다. 2019년 늦어도 2020년까지 양사를 합쳐 매출 1조원 기업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최근 주관사 선정에 착수했다. 증권사 서너곳으로부터 참여 의향서를 접수했다. 2016년 합병 추진 당시 NH투자증권이 참여했는데 이번에 NH투자증권도 다시 서류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익IPS가 2016년 테라세미콘(현 원익테라세미콘) 흡수 합병을 추진했을 당시 테라세미콘은 2017년 매출 5000억원대, 2018년 매출 6000억원대에 달할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삼성디스플레이가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십수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설비 투자를 집행할 때 테라세미콘은 삼성디스플레이에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핵심 전공정 중 하나인 열처리 장비를 독점 공급하며 빠르게 몸집을 키웠다. 원익그룹 핵심 계열사인 원익IPS와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형성됐다.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가 A3 투자를 마무리한 뒤 신공장 A5에 투자한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되고 애플이 아이폰용 패널 주문량을 급작스럽게 줄이면서 급격히 투자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핵심 고객사인 삼성 주문량이 뚝 끊기다시피 하면서 테라세미콘 실적도 하락했다. 2017년 5000억원 매출 돌파를 기대했다. 하지만 매출 3611억원, 영업이익 629억원을 달성하는데 그쳤다. 삼성전자 반도체용 장비와 중국향 장비 비중을 늘리며 다변화를 꾀했지만 주 고객사인 삼성디스플레이 신규 투자 가능성이 희박해 올해 실적은 전년 대비 하락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증권가는 원익테라세미콘 올해와 내년 연간 매출이 2000억원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원익IPS는 2016년 원익홀딩스와 물적분할하면서 가스캐비닛 등 일부 사업 실적이 원익홀딩스로 잡며 몸집이 줄었다. 2013년 매출 4230억원 2014년 5570억원, 2015년 6470억원이었으나 물적분할 후 2016년 매출 2441억원, 2017년 6309억원을 기록했다.
세메스, 에스에프에이 등 주요 장비 경쟁사가 사업을 다각화해 안정적인 체계를 갖춰 매출 1조원을 달성한 것도 부담이다. 원익IPS는 반도체 장비가 전체 매출의 70~80%에 달한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디스플레이 사업을 보강하고 제품군을 빠르게 확대하려면 디스플레이·반도체 시장에서 앞선 열처리 기술로 인정받은 테라세미콘을 흡수 합병하는 게 효과적이다.
원익IPS가 원익테라세미콘 흡수 합병에 성공하면 매출 1조원에 가까운 새로운 장비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사업영역과 고객사를 넓혀 좀 더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갖추면 난도 높은 차세대 기술을 연구개발할 수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원익테라세미콘 흡수 합병이 주주 반대로 무산됐지만 최근 중국 투자로 인한 디스플레이 시장의 성장 한계와 원익테라세미콘의 실적·주가 하락 때문에 합병을 다시 추진하는데 좋은 환경이 형성된 것 같다”며 “2016년 당시 논란이 됐던 합병비율 등 문제를 잘 풀어나가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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