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투자로 얼마나 벌었니?”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대화가 흥미롭다. 아마 암호화폐와 혼동한 듯하다. 사실 블록체인 하면 암호화폐와 초기 투자로 횡재한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정부가 집중 투자하겠다고 하고 제주도가 특구 지정을 선언한 블록체인에는 단순한 투자나 기술을 넘어 감춰진 철학이 있다.
분산합의제는 중앙선거관리소 없이 각자 투표하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를 의미한다. 내 투표용지가 모두에게 배달되기 때문에 절반 이상 투표용지가 변질되지 않는 한 집계가 가능하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득세해서 비잔틴 알고리즘과 같은 분산합의 의미가 퇴색하긴 했지만 블록체인에는 4차 산업혁명의 의미와 일치하는 '평등' '소통' '협업'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있다.
합의 알고리즘 가운데 하나인 비잔틴 기법은 각지에 흩어진 장군이 동시에 적을 공격하기 위한 방법이다. 전령이 중간에 변질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동일한 메시지를 전원에게 보내고, 절반 이상이 같으면 메시지를 신뢰한다. 전제 조건은 모든 장군의 메시지 비중이 평등하고, 소통 방법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또 장군은 메시지가 전달하는 내용을 동시에 실행해서 시너지 극대화를 도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철학과 일치한다.
정부도 기업도 블록체인 의미를 경영에 담을 수 있으면 대박이다. 청와대가 부처에 군림하지 않고 부처 칸막이도 걷어낼 수 있는 묘책이다. 자리 보전에 급급해서 인사와 예산조차 소신껏 사용하지 못하고 권력자 눈치를 보는 장관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복지부동하는 공직자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처방이다. 모든 기록이 분산돼 근거로 남기 때문에 감사는 더 이상 필요 없고, 업적은 분산 기록되기 때문에 공정한 평가도 보장된다.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 리더는 스스로의 권한을 포기하고 전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평등의 원칙이다. 중압집중 체제가 분산합의 체제보다 경영이 훨씬 쉽고 효율이 있어서 중앙 중심 경영은 포기하기 어렵다. 내로남불에 심취한 지도자에겐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다른 하나는 평가제도 혁신이다. 합의제 정부는 개인이 업적 평가와 더불어 협업 평가에 높은 비중을 둔다. 위원회에서 패거리 싸움이나 하는 현 정부 합의제와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블록체인 정부 구현은 개인의 능력과 협업의 정당한 평가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법' '우리 예산'이 쓸데없는 단어가 될 것이다.
인력을 중앙에서 배치하는 행정고시 제도는 폐지하고, 정부 문서는 블록체인화해야 한다. 기획예산처의 예산 배분을 부처 간 총액제로 전환하는 혁신도 필요하다. 국정관리시스템 도입은 필수다. 이명박(MB) 정부에서 사라진 실시간국정관리시스템 '이지원'을 인공지능(AI) 기능과 함께 부활시키는 방법도 있다. 부작용만 초래하는 자질구레한 변화가 아니라 전체를 바꾸는 결단과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는 강력한 리더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도 기업도 혁신은 어렵다. 경영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적폐를 완전히 뿌리 뽑으려면 쓰레기 청소보다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는 환경이 우선돼야 한다. 블록체인 정부가 답이다. 평등한 국민, 소통하는 나라, 협업하는 블록체인 정부를 선언하고 지속 변화를 추구하는 지도자를 기대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