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SK·LG 4대 그룹이 북한과 경제 협력을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당장 경제협력을 시작하기는 어렵더라도 미래를 겨냥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중장기 경제 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국제사회 대북제재 완화 및 해제 이후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한 정부와 산업계 차원 준비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경제협력 '큰 그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김용환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경제인 17명은 18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리용남 북한 경제담당 내각부총리를 비롯한 경제정책 담당자와 면담했다.
경제인은 대북 제재를 의식해 구체 협력 계획에 대한 언급은 피했지만 맡은 분야를 소개하면서 북한 경제 현안에 대한 설명을 경청했다. '큰 그림' 차원에서 남북 경제 협력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이 부회장은 “평양역 건너편 건물에 '과학중심 인재중심'이라고 써 있다”면서 “삼성 기본경영 철학이 '기술중심 인재중심'인데 '이게 한민족이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기회에 더 많이 알고, 신뢰관계를 쌓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용환 부회장은 “현대차는 완성차 기업 2개와 물류, 건설 분야 등 50여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있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돼 빨리 발전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은 “2007년에 왔었는데 11년 만에 오니까 많은 발전이 있는 것 같다”면서 “건물도 많이 높아졌지만 나무도 많이 자라난 것 같고 상당히 보기 좋다”고 말했다.
구광모 회장은 “LG는 전자, 화학, 통신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짧게 소개했다.
◇한반도 신경제구상 위주 논의
리 부총리는 “남과 북이 손을 잡고 지혜와 힘을 합쳐나간다면 언제든지 경제협력사업에서 큰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리 부총리는 북한 외자 유치와 대외 경제협력을 총괄하는 실권자이자 컨트롤타워로 손꼽힌다. 4대 그룹을 비롯한 경제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바탕으로 북한이 필요로하는 분야를 듣고 협력을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새로운 선언이나 합의보다는 기존 합의를 어떻게 이행할지에 대한 의지 재확인과 계획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분야 역시 국제사회 제재로 인해 구체 분야를 제시하거나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번 경제인 면담 역시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대한 남북 추진 의지를 재확인하고, 각 경제 참여 주체의 역할과 협력 과제를 발전시킬 방안을 논의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북한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필요한 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리용남 부총리는 철도, 해양 등 구체 분야를 제시하며 협력을 다짐했다. 리 부총리는 “북남관계 중에서 철도협력이 제일 중요하고 제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1년에 몇 번씩 와야 할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생산 위주 수산업에서 자원 보유 수산업으로 가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이후 경협 전망은
경제인 특별수행단은 저녁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이 모두 참석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4대 그룹 투자 결정권을 지닌 총수급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큰 틀에서 북한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청취하고, 제재 해제시 협력과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관측된다.
경제인 특별수행단은 19일 오후 평양 등 산업시설을 시찰한다.
북한이 핵심 개발지구로 내세우는 '삼지연지구' '원산갈마지구' 계획 소개와 더불어 북한 산업 현실에 대한 설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큰 틀에서 구상을 돕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경제계는 최고 결정권자가 북한에서 확인한 경제 협력 의지와 산업현장에 대한 실태 확인을 바탕으로 전략 마련에 보다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기획재정부와 통일부를 중심으로 보다 구체적 경제협력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과 관련해 양해각서(MOU) 등 당장 구체적인 결과물은 어렵더라도 남북 간 논의를 막 시작한 협력 분야에 있어서 대화를 충분히 진척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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