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 고향집 추석 차례상에서는 '일자리'가 화제로 올랐다. 서울 포함 전국에서 '집값' 이슈가 떠들썩한데 고향에서 집값 걱정은 오히려 사치였다. 당장 돈을 벌어서 먹고 살길이 걱정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결국 '기승전일자리' 문제로 귀결됐다.
중소 조선소에 근무하는 사람은 정부의 '묻지 마 구조조정'에 곡소리를 냈다. 유관 업무 종사자도 우울하긴 매한가지다. 예전만큼 수주 실적이 없다 보니 조선업계 선진 기술 개발도 '올스톱'이다. 변리사, 변호사 등 직종도 더 이상 재미가 없다. 지역 경제는 소비 심리 위축으로 파탄났다. 한때 통영과 거제는 건설업계에서 '분양 불패'로 불렸지만 지금은 '무덤'이다.
정부는 통영 성동조선해양 같은 중형 조선소에 대해 대체 산업 육성과 퇴직자 재취업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실직자를 위한 '조선업 희망센터'는 희망고문센터로 일찌감치 전락했다.
정부는 지속되는 고용지표 부진을 조선업·자동차 산업 구조조정을 주요인으로 꼽았다. 실제 통영과 거제가 조선업 불황 직격탄을 맞아 전국 최악의 고용지표 성적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일자리정부' 앞길이 막막하다. 매월 고용통계 발표 때마다 '고용쇼크' 소동이 빚어지는데도 움직임이 없다. '구조 문제여서 단기 개선이 어렵다'는 고백만 난무하고 있다.
청와대 인식은 이번 추석 민심에서 느낀 현실과 더 동떨어져 있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일자리 개선 효과는 올 연말께, 소득 분배 효과는 늦어도 내년 2분기에는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말이라면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경제 체질이 바뀌며 수반되는 통증'이라고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희망은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실현 불가능한 기대는 오히려 큰 절망만 가져다 줄 뿐이다. 실제 현실은 계속해서 안 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정부는 장밋빛 전망만을 국민 머릿속에 심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기반으로 한 '저녁 있는 삶'. 출발은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고문'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과 대책 마련 과정에서 긍정보다는 부정이라는 중간 결과물이 더 불거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은 연일 최악 실업 사태에 직면하면서 동력을 잃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평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평화가 경제”라고 외쳤다. 일자리 정책 실패를 성토하는 추석 민심에 이 같은 외침은 추상뿐인 구호로 그쳤다.
그토록 다양한 대외 변수가 많은 상황 속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걸음씩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것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씁쓸했다. 우리 정부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통제할 수 있는 경제 현안 처리 능력은 뒤처졌기 때문이다.
일자리 문제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정책이 부실하거나 관심이 부족했다는 것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정부는 일자리 문제에서도 해결 능력을 보여 줘야 한다. 내년 설 민심에서는 '희망고문'이 아니라 '희망'을 맛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