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아기 출산에 비유하면 우리는 이제 막 임신한 거지요.” 3차 남북 정상 평양회담 감동과 앞으로 필요한 노력을 암시하는 말이다. 임신의 기쁨은 잠깐이고 10개월 후 엄청난 산고는 물론 유산과 기형아의 우려 속에서 아이는 탄생하기 때문이다. 출산이 끝은 아니다. 아이 성장은 막대한 양육 비용과 부모의 헌신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아기의 출산은 중요하다. 아이는 제대로 성장하면 밝은 미래와 행복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평양공동선언문은 군사, 관광, 철도, 환경, 보건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는 제외됐지만 실제 협력에서 산업의 감초인 ICT가 빠질 수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북한 ICT 인프라 구축, 산업 융합을 통한 교류와 시장 창출을 언급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보인다. 이제부터는 과학과 논리 기반의 남북 ICT 협력이 통일 및 번영의 주춧돌이 되도록 정부, 전문가가 힘을 합해야 한다.
정보통신 시설 구축에는 신중해야 한다. 정보통신망은 산업과 생활에 혈류 공급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더욱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산업과 생활에 기여할 뿐 지도층이나 권력이 장악하기 부적합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무선망 위주의 지역망을 구축해 일반인의 정보 공유와 산업망으로만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관리를 통해 통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칫 정보통신 시설이 군사망으로 변질되면 통일의 길은 그만큼 멀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한복판에서 연설하는 감동도 긴장의 끈을 늦추는 순간 생기는 자멸의 길을 막을 수 없다.
ICT 협력은 철로 건설과 달리 무상 지원이 아니다. 통일 이전에는 국가 간 협상 조건인 투자에 상응하는 대가와 대등한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대가는 물질이나 시장 통제의 방법일 수도 있다. 한 민족임을 내세워 무상 지원하는 ICT 협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균형의 부작용을 불러들일 수 있다.
사람 우선의 ICT 협력이 필요하다. 개발자와 참여자가 함께 일하면서 '하나'가 되는 작업이다. 이미 자카르타 팔렘밤 아시안게임에서 보여 준 '사람 중심의 협력' 효과는 ICT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ICT 개발은 함께 생각하고, 논의하고, 설계·구축·시험하는 과정에서 하나가 돼야만 성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ICT 전문가가 먼저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다.
ICT 분야 기술과 사업의 공동 작업 효과는 다양하다.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ICT 인프라에서 함께 연습한 남북한의 우수한 소프트웨어(SW)와 정보보호 분야 인력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기술의 결합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임은 물론 곱절의 시장도 확보할 수 있다. 또 공동 개발은 SW 제품의 신뢰를 담보한다. 은밀한 시스템 잠입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 때문이다.
남북 경제협력에는 중국·러시아·일본·미국, 심지어 동남아 주변 국가도 참여하기를 원한다. 정부는 남북 ICT 교류 협력 기반으로 참여국과 관계를 주도할 수 있도록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인내와 끈기로 추진해야 한다.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인내 후에는 성공한 자녀가 있어야 성공이다. 한 개를 주고 열 개를 얻을 수 있는 사업에 인색할 필요도 없지만 한 개마저 날리고 또 다른 열 개를 잃지 않으려면 철저히 조사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리더와 전문가가 필요하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