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구나 싶은 순간이 3초래.”
영화 '너의 결혼식'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아련하게 담아낸 영화다. 3초 운명을 믿는 여자와 그 여자만을 바라보는 순정남의 끈질긴 사랑 이야기는 열아홉살부터 10년에 걸쳐 이어진다. 남자 주인공 시점에서 첫사랑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영화 관전포인트다. 세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첫사랑 에피소드는 공감대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영화는 여운을 남긴다.
첫사랑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강렬하게 남아있을까.
심리학자는 첫사랑이 '초두효과'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초두현상을 증명하는 실험을 했다. 다수 실험대상자에게 A와 B라는 사람의 성격 정보를 줬다. A 성격은 똑똑하다·근면하다·충동적이다·비판적이다·고집스럽다·질투심이 많다 순으로 전달했고, B 성격은 질투심이 많다·고집스럽다·비판적이다·충동적이다·근면하다·똑똑하다 순으로 전달했다.
실험대상자 다수는 A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B에 대해서는 비호감을 나타냈다. A와 B 성격은 모두 동일하고 순서만 바꿨지만 결과는 달랐다. A는 '똑똑하다', '근면하다'를 주로 기억했고, B는 '질투심이 많다', '고집스럽다'는 성격을 떠올린 것이다. 첫인상이 사람을 판단하고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로, 초두효과에서 비롯됐다는 결과다.
일각에서는 첫사랑 기억이 '자이가르닉 현상'과 밀접하다는 주장도 있다.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이 발견한 이 현상은 '마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가 마무리하지 못한 문제를 기억 회로에 저장해두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완결된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이론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자이가르닉 현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크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도 첫사랑을 기억한다는 색다른 주장이 있다. 미국 코넬대 에일린 허베츠 연구팀은 암컷 늑대거미가 어릴 때 본 수컷과 닮은 익숙한 모습의 수컷을 대상으로 짝짓기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암컷 늑대거미가 어릴 때 자신을 유혹했거나 짝사랑했던 수컷 거미를 잊지 못하는 '사회적 인지 능력'을 갖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말콤 브라이닌 사회학 박사는 '관계의 변화'라는 책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 첫사랑 기억에 연연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첫사랑 기억이 새로운 만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렬한 첫사랑 기억이 비현실 로맨스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브라이닌 박사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