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조조는 마등과 전투하다가 진영 내부에 배신자가 있음을 알아채고 배후의 하나로 아들 조비를 지목한다. 이에 조비를 잡아오라 명하자 조비는 스승인 사마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두 가지 방도를 듣는다. 첫째 절대 발뺌할 것. 둘째 배신자가 조비 동생인 조식과 안면이 있는 사이이니 배후를 동생에게 떠넘길 것 등을 조언한다. 가르쳐 준 방도대로 동생이 배후라고 지목하자 조조는 형제간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분노하며 진짜로 목을 칠 기세였다. 그러나 조비는 목숨이 날아갈 뻔한 절체절명 순간까지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 결과 조비는 살아남아 결국 조조 후계자가 되는데 성공한다.
조비 사례가 오늘날 디지털 혁명 시대에도 통할까. 직업군인 생활을 오래한 친구가 “쿠데타는 이제 불가능하다. 음모를 꾸미는 순간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기 때문에…”라고 한다. 세월호 사태 때도 승객에게 퇴선방송을 했다는 것이다. 사실과 달랐다. 나중에 탑승객이 가족과 주고받은 SNS 등을 통해 발표가 거짓이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래서 뉴스나 신문을 보면 비자금, 재판 거래 의혹 등 어떠한 수사를 착수할 때도 수사기관이 가장 공을 많이 들이는 것은 휴대폰, PC, 서버, CCTV 등을 압수 수색하는 것이다. 고의로 지운 파일이라 해도 상당 부분 복구가 가능하고,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활용한 결과는 증거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 본부장은 “요즘 오리발 내밀기가 어렵습니다.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가 아니라 '디지털 혁명'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일례로 사업을 추진했는데 상대방과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결렬됐다고 한다. 그런데 담당 직원은 뜬금없이 상대방 손실을 배상해 주고, 본부장이 약속한 것을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전혀 그런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송구합니다. 문제 생기면 도와주십시오”라는 보고를 예상했고, 또 부하직원이니 당연히 도우려고 하던 참이었다.
알고 보니 그 직원은 문서 처리상 문제를 야기했고. 상대방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는 것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변호사를 만나 상담했더니 손실배상 책임은 없고 문서 처리상 문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쁜 소식을 알려주니 감사는커녕 과민 반응을 하더라는 것이다. 사안이 중대하지 않다고 생각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묻어 두기로 했다. 그런데 재수 없게 회사 감사실이 포착, 보존된 전자파일로 인해 제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부하 직원이어서 구제하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방법이 없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례는 디지털 혁명의 결과다. 대한민국이 신뢰 사회가 되려면 필수 조건 가운데 하나는 어느 누구도 억울하거나 누명을 쓰는 케이스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경찰서에 불려 가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는 목소리 크게 칠 시간에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갈수록 디지털 혁명은 신뢰 사회로 가기 위한 일등공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재인 단국대 경영대학원장 jioh@dankook.ac.kr
-
김현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