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19>'소프트파워 혁신' 추진하자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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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올해로 572돌을 맞는다고 한다. 한 자료에 따르면 1926년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가 음력 9월 29일, 양력으로는 11월 4일 훈민정음 반포 여덟 회갑(48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고 이날을 제1회 '가갸날'이라고 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훗날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가갸글' 대신 '한글'이라는 이름한 뒤인 1928년에 '한글날'이 됐다는 것이다.

현재 10월 9일인 날짜를 놓고선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세종 28년 9월 상순'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해서 이날로 한 것이고 정확한 실제 반포일은 알기 어렵다고도 한다. 따지고 보면 날짜 보다는 일 년에 하루만이라도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는 데 진정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올해 한글날을 맞아 흥미로운 기사가 시선을 끈다.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이 공책에 서툰 글씨로 한글 가사를 적어 트위터 등에 올렸다는 것이다. 어느 인터넷 기사에는 '감사합니다_방탄소년단'이라는 해시태그에 “아침은 다시 올거야/어떤 어둠도/어떤 계잘도(계절의 오기)/ 영원할 수 없으니까”라고 써 내려간 메모도 보인다. '스프링 데이(봄날)'란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이라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으며 문득 떠오르는 용어가 하나 있다. 바로 '소프트 파워'다. 일견 생경할 수 있는 이것은 미국 하버드대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1990년 당시 급변하는 국제관계 환경을 보면서 이른바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전략으로 제안한 것이다.

1990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바운드 투 리드'에 따르면 '소프트 파워' 또는 '연성권력(軟性權力)'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상대방의 공감을 얻는 능력'으로 설명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종래 강한 힘이나 권력 또는 강제나 강압으로 대변되는 하드 파워와 대비돼 상대방의 동의와 협력을 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제572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이낙연 총리가 “세계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의 한글 노랫말을 받아 적고 따라 부른다”는 표현은 우리 한글과 문화를 알리는데 소프트 파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고, 이런 점에서 지금의 정책에 시사하는 바도 커 보인다.

실상 올해 초 한 연구기관 중심으로 소프트 파워를 어떻게 정책에 적용하고 추진할 수 있을지 검토한 바가 있다. 검토 결과 연구팀은 이 소프트 파워 방식이 문화, 스포츠, 국제 협력 같은 분야는 물론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기술(ICT) 같은 혁신 정책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에너지, 환경, 대기,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난제에 관한 국제 공동 연구에 참여하거나 개발도상국이 처한 문제 해결을 돕는 것, 나아가 우리 사회 취약 계층이 겪고 있는 문제나 소상공인 또는 영세기업의 애로 사항을 해결하는 기술 개발 역시 이 같은 범주에 든다고도 볼 수 있다. 더욱이 방탄소년단의 가치가 1조원을 넘어 2조원까지 이른다는 평가처럼 소프트 파워는 혁신 성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일단의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급속히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소프트 파워 정책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게 된다.

과학기술과 ICT은 산적한 사회 문제 해결에서 소프트 파워의 근간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일자리 문제나 포용 성장 추구에도 기여할 수 있다. 바라건대 정부는 더욱더 창의성을 발휘해서 기술혁신 정책에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찾아주기 바란다. '소프트 파워 혁신'이 이 비전을 찾는데 한 가지 단서가 되리라 기대해 본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